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아웃사이더의 지갑

김상열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디카폰’ ‘뮤직폰’ ‘가로 화면’…. 이런 휴대전화가 과연 필자 같은 세대에게 필요한 것이냐는 의문이 든다. 인터넷 없이는 하루도 못 산다는 신세대에게는 화면 크기, 화소 수, MP3 저장용량 등이 구매요인이 될지 모르겠지만 필자의 경우에는 이들을 갖추기 위해 감히 호주머니를 털 엄두가 나질 않는다. 최근 신세대나 도시민이 핵심 소비주체로 등장하면서 기업의 제품개발이나 판촉행위가 이들에게 초점을 두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호기심과 까다로운 안목이 몇몇 국내기업들을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등극시키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정보기술(IT)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장년층 소비자는 이른바 ‘소비자 소외’를 경험하게 됨으로써 첨단기술의 아웃사이더가 되고 말았다. 제품 디자인, 마케팅 등 여러 면에서 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은 ‘마이너리그’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 소외’가 존재한다는 것은 곧 기업에 새로운 사업 기회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기업의 역발상이 필요한 대목이다.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을 움직이는 힘은 전체 인구의 27%에 불과한 50세 이상 장년층이다. 이들은 한해 2조달러의 수입을 벌어들이면서 전체 자산의 70%를 움직이는 큰손으로 군림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 50대 이상의 시니어마켓(Senior Market)을 적극 활용해 중장기적 성장기반을 다지는 미국기업들이 늘고 있다. 국내 시장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체 세대 중에서 가계수입이 가장 높은 세대는 다름 아닌 50대이며 이때부터 자녀양육 의무에서 해방되기 시작하기 때문에 재량적 소비 또한 매우 높은 실정이다. 한 민간연구소는 우리나라가 고령화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전체 가계소비 중 50세 이상 시니어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23.8%에서 오는 2010년 3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업들이 장년층을 대상으로 세심한 배려를 할 경우, 민간소비를 진작시키는 적잖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산업계에는 ‘프로슈머(Prosumer)’라는 말이 급속히 번지고 있다.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인 프로슈머는 생산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소비자를 일컫는 말이다. IT산업에 소외되고 있는 장년층 소비자를 제품기획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시킴으로써 장년층의 거대한 구매력을 자극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상당한 구매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소외돼 있는 장년층 아웃사이더들을 기업들이 새로운 소비집단으로 인식하고 배려한다면 이들의 두둑한 지갑은 생각보다 쉽게 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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