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 대한민국 육군의 기본화기다. 22년 동안 일선을 지켜왔지만 약간의 개조를 거친다면 20년은 더 써먹을 수 있는 총이다. 최대 장점은 한창 생산될 때 정당 29만원이었다는 가격. 비슷한 성능을 지닌 일본 89식 소총의 35만엔에 비하면 10%도 안된다. 양질에 값싼 소총을 우리가 갖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세계 5위, 67만명의 병력에서 나오는 수요에 있다.
소총뿐 아니다. 전쟁 위협에 시달리기에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고 막대한 군사비를 투입해야 하는 지정학적 여건으로 한국은 방위산업을 키우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을 갖고 있다. 호들갑스럽게 홍보한 '국산 10대 명품 무기' 등도 이 같은 입지조건과 연구개발에 쏟은 정성의 산물이다.
군의 조급증과 업계의 장삿속
국산무기의 수출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는데 과연 순항 중일까. 그렇지 않다. 곡사포 폭발과 K-21 보병전투차의 침수, 차세대 K-2전차의 파워팩 이상이 연이어 발생했다. 국산 어뢰에 대한 신뢰성 시비도 끊이지 않는다. 눈속임도 있다. '3차 연평해전 승리'의 주역이었다던 신형 윤영하 고속전투함은 교전 당시 하자 보수를 받고 있었을 정도로 이상투성이다. 가히 국산무기의 위기다.
수십년간 키워온 조선과 자동차ㆍ기계산업의 바탕에 거대한 수요라는 이점을 안고 있는 우리가 우리 손으로 만든 신무기는 왜 신뢰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것인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눈 가리고 아웅'식의 개발이 문제다. 양산에 들어가기 전 실전보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 테스트를 거쳐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신형 보병전투차가 실전 배치돼 도하훈련에 투입되자마자 침수됐다는 사실은 테스트와 품질 검사가 제대로 치러지지 않았다는 점을 말해준다.
두번째 요인은 인사 시스템에 있다. 무기 소요 제기와 연구, 개발, 생산, 실전 배치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반면 군의 책임자는 1~2년 단위로 보직이 변경되는 통에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다. 개발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진급이나 보직을 위해 쉬쉬하거나 오히려 강행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테스트 기간에 속도와 소음은 물론 정비성 문제까지 불거진 윤영하함의 실전배치와 추가생산이 강행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해결책 마련도 쉽지 않다. 방위산업이 처음 육성되던 197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누적되며 구조화했기 때문이다. 결국 군의 인사평가에서 현실에 맞는 무기 개발, 업체의 눈속임과 로비 차단 등이 선행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결함과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실마리를 어디에서 풀어야 할까. 문제와 그 해결 방법은 같은 곳에 있다. 일단 사고 원인부터 정확하게 밝혀내는 게 순서지만 이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 K-21의 침수와 응급처치가 발생한 바로 당일 군과 업체의 2차 계약이 이뤄졌다는 사실의 당위성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최악의 시나리오 外産무기 확대
최악의 시나리오도 있다. 국산무기의 신뢰성을 문제 삼아 외국산 수입을 늘리는 경우가 그것이다. 기우라면 좋겠지만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연구인력 감축이 진행되고 있으며 현정권이 우방과 관계를 중시하고 효율과 실용의 기치를 내걸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외국제 무기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품질이 떨어지는 신무기의 폐해는 치명적이다. 평화국가 일본이 왜 외국산보다 수십배의 돈을 들어가는 자국산 소총ㆍ전차ㆍ항공기를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떠한 전장 환경에서도 제 성능을 낼 수 있는 무기 확보와 방위산업 발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이루는 길은 속도 조정에 있다. 늦더라도 점검하고 인사와 조달 시스템을 개혁해나간다면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고는 되려 약이 될 수 있다. 위기는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