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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다시 학기초다. 면담을 위해 학교를 찾을 학부모들의 고민도 다시 시작됐다. '촌지'이야기다. "설마 요새도 촌지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물론 과거에 비하면 많은 개선이 일어났다.
올해 5월 국민권익위원회는 신고자 포상금 지급 제도를 확대해 교사 촌지 고발에도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시도교육청에서도 '청렴도 제고'에 사활을 걸고 부패척결에 앞장서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010년부터 교육감 직속으로 공익제보콜센터를 설치해 운영해오고 있고 경기도교육청에서는 얼마 전 직원들이 자체적으로 '청렴 연구동아리'를 만들어 청렴 문화 확산을 위한 아이디어를 만드는데 돌입했다.
그러나 깊숙이 뿌리내린 촌지를 제거하는 데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특히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한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아이를 맡겨 놓은 입장에서는 아이가 야단을 들었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뭔가 준비해서 학교를 찾아가야 하나 고민된다"고 말한다.
◇학부모 '촌지 스트레스' 여전=경기도 광명에 사는 김모씨는 '교사에게 촌지를 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뜸 "당연한 걸 왜 묻나"라고 답했다. A씨는 "요즘엔 스승의 날엔 규제가 심해서 잘 보내지 않고 학기초에 학부모 면담이나 부정기적으로 만날 때 봉투를 준비한다"며 "10~20만원 정도는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아 요새는 30만원에서 50만원까지 형편 되는대로 준다"고 말했다.
강남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 학부모 정모씨 동네의 '촌지 물가'는 또 다르다. 학부모마다 다르겠지만 1학기와 2학기 초에 100만원을 들고 가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촌지를 받지 않는 곳도 있다. 자녀가 일산의 모 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장모씨는 "다른 학부모들한테도 물어봤더니 이 학교에는 그런 게 전혀 없다고 하더라"며 "아무리 그래도 처음엔 걱정을 조금 하긴 했는데 지내보니 실제로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아 이제는 안심하고 지낸다"고 말했다.
촌지 스트레스를 우려한 학부모들은 아예 아이가 입학할 학교를 고르는 중요 기준으로 '촌지 없는 학교'를 꼽기도 한다. 내년에 자녀를 초등학교에 보내는 정모씨는 "주변에 사립 초등학교 한 곳이 촌지가 전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아이를 그 학교에 보내기로 마음먹는데 결정적인 동기가 됐다"고 말했다.
◇촌지 주는 방법도 천태만상=교사의 금품수수에 대한 처벌과 감시가 강화되면서 촌지를 건네는 방법도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학교를 자주 찾는 일부 학부모 커뮤니티에는 '촌지 족보'도 오간다. 학부모들이 여러 교사를 거치면서 쌓인 자료를 바탕으로 촌지를 받는 교사와 받지 않는 교사를 분류해 놓은 것이다. 자녀의 담임 교사가 촌지를 받는 교사라면 얼마를 받았었는지도 파악할 수 있고,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한테는 아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학용품이나 간식을 보내는 식이다.
마포구의 한 초등학교에 지난해 아이를 입학시킨 학부모는 "동네에 친한 엄마들이 좀 있어서 다행히 족보를 넘겨받을 수 있었다"며 "아이가 어릴수록 선생님의 관심이 중요하기 때문에 부모로서 그런 소문만 들려도 (촌지를) 안 줄려고 해도 안 줄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아예 학교 대신 교사의 집을 직접 찾아가거나 택배를 보내는 경우도 많다.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어머니회 대표가 선생님 댁으로 직접 찾아가서 선물 등 촌지를 준다고 돈을 걷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 "요새는 핸드폰으로 모바일 상품권을 보내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며 "만날 필요 없이 간편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서로서로 부담스런 촌지 왜 근절 안되나=촌지 문제에 있어 교사들이라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교사들은 학부모들의 선물이나 촌지를 받고 골머리를 앓는 경우도 많다.
서울의 모 초등학교 최모 교사는 "아이가 산만해서 부모님 면담을 했는데 책 사이에 촌지를 끼워서 주고 가셨다"며 "돌려드리려 갖은 노력을 했지만 거절하셔서 어쩔 수 없이 학생 편에 돌려드리긴 했지만 이젠 아이 문제로 학부모를 만나야 할 때에는 걱정부터 앞선다"고 부담감을 털어놨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 근무하는 4년 차 교사 송모씨는 아직까지 돈이나 상품권이 오가는 사례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송씨가 재직 중인 중학교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자체적으로 교사 대상 청렴 연수를 실시한다. 그는 "종종 빵이나 케이크처럼 먹는 선물이 들어오는 데 챙겨가는 선생님은 많지 않고 보통 교무실에 차려 놓고 같이 먹는다"고 전했다. 또 "한 번은 양주 선물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나마 아이 아버지께서 양주회사에 계신 분이라 그냥 받았다"고 말했다.
송씨는 "반장이나 부반장 엄마들이 관례적으로 한 학기에 수 차례 학급에 피자나 햄버거를 돌리고 애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며 "초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해와 잘 안 바뀌는데 솔직히 이런 것도 부담스럽고 제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서로 불편한 촌지가 근절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학부모들이 혹시라도 자녀의 학교생활에 영향을 끼칠까 신고를 꺼리기 때문이다.
송파구에 사는 학부모 정씨는 자녀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시절 촌지를 요구하는 교사에 분개해 신고를 하려다 주위 사람들의 만류로 그만둔 경우다. 정씨는 "교육청 사람들도 학교 선생님들과 어떻게든 연이 닿아 있을 텐데 괜히 신고했다가 아이에게 오히려 피해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라며 "다들 1년만 참으면 된다면서 나서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시교육청에서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 적발된 건수는 초등 5건, 중등 5건 등 총 10건에 그쳤다. 적발금액은 초등학교 290만4,000원, 중등은 6,730만 6,000원이다. 금품수수가 적발된 교원들은 파면 (1명), 정직 (4명), 감봉 (2명), 견책 (3명) 조치를 받았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신고자의 비밀을 누설하는 경우 처벌 기준을 강화하는 등 신고자의 신상 보호를 위한 노력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 시도교육청 평가보고서 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