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금감원의 삼고초려
우승호 derrida@sed.co.kr
후한(後漢) 말 유비는 막강한 군사력이 있었지만 조조에게 번번이 당했다. 47세 유비는 예물을 싣고 관우ㆍ장비와 아들뻘인 27세의 제갈량을 찾아갔다. 세 번째 방문 때 제갈량은 큰절로 유비를 맞았다.
‘삼고초려’ 얘기다. 하지만 삼고초려가 오늘날까지 의미를 갖는 건 단순히 나이 어린 인재를 세 번이나 찾았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하는 가신들을 설득하고 그를 끝까지 믿고 힘을 실어 줘 큰 업적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도 출범 직후 ‘삼고초려’라는 인재추천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요 정부산하 기관장의 등용문으로 활용했다. 지난 2005년 한국관광공사ㆍ대한주택공사 등 28개 정부산하 기관장 중 17곳을 삼고초려를 통해 추천된 사람들을 뽑았다. 하지만 추천자 중 74%는 자기가 자신을 추천하는 자가발전이었다.
지난 6일 김용덕 신임 금융감독위원장은 취임일성으로 ‘변화와 혁신’을 내세웠다. “변화를 두려워 말고 과감한 혁신을 통해 금융산업 선진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선진금융감독기관의 전문가를 물색해 노하우를 전수받겠다”며 “윌리엄 라이백 홍콩금융감독청 수석 부총재의 영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금감원 직원들도 “라이백의 부원장 임명은 관치금융의 해독제이자 한국 금융감독 시스템을 선진적인 시스템으로 전환하는데 필요하다”며 크게 환영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금감위와 금감원 부원장은 한국적 상황을 강조하면서 그의 영입, 변화와 혁신을 거부했다. 라이백을 이빨 빠진 호랑이로 만드는 고문자리를 제의했다.
세계은행ㆍFRBㆍ싱가포르 통화감독청 등 세계 각국이 라이백을 영입하기 위해 뛰고 있다. 다행히 그는 금감원 고문 자리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고초려’는 누군가를 데려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능력에 맞는 역할과 권한을 부여해 성과를 낼때 완성된다. 김 위원장이 내세운 변화와 혁신의 대상은 명확해졌다. 라이백의 부원장 임명을 통해 그것을 실천할 때다.
입력시간 : 2007/08/08 1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