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여객선 침몰 대참사]'전문가 없는 컨트롤타워' 사고땐 우왕좌왕… 현장에 지휘권 줘야

[벼랑 끝에 선 안전코리아] <2> 무용지물된 매뉴얼

법·제도 아무리 잘갖춰져도 운영 삐걱대면 있으나마나

중대본 같은 컨트롤타워는 현장 지원 업무만 맡을 필요

"법과 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아서 정부가 세월호 침몰 사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재난 대응 시스템은 다른 나라 모델을 벤치마킹해 만들었기 때문에 선진국 못지않게 잘 마련돼 있습니다. 형식이나 절차에는 문제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은방 한국해양대 해양경찰학과 교수)

정부가 세월호 침몰 사고와 같은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매뉴얼을 갖추고도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안전과 관련된 3,000개가 넘는 매뉴얼과 수많은 법규가 있지만 정부 관계자들이 정작 실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우왕좌왕하며 이를 효과적으로 운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번 세월호 참사 대응 모습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 것은 결국 법과 제도가 아닌 운영의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국가위기관리학회장을 맡고 있는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도 법과 제도, 매뉴얼의 미비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노 교수는 "매뉴얼은 오히려 과도할 정도로 많은데 문제는 그 매뉴얼이 현실에서 무용지물이 돼버리고 있는 것"이라며 "한국은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법과 제도가 개선돼왔고 현재 형식적인 제도나 규제는 잘돼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참사가 일어나면 그때마다 법과 제도가 업그레이드돼왔다. 지난 1949년 5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평해호 침몰 사고가 생긴 이듬해 선박관리법이 제정됐고 1970년 3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남영호 사고 이후에는 1972년 여객선 운항안전관리제도가 신설됐다. 지난해 3월에는 대광호가 LPG 운반선과 충돌, 침몰해 탑승자 7명이 모두 실종되는 사고가 일어나자 7월 도주선박의 선장 또는 승무원에 대한 가중처벌 조항이 새로 만들어졌다.


정부는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또다시 매뉴얼을 손질할 태세다. 박근혜 대통령은 앞서 2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안전행정부에 재난 대응 매뉴얼을 다시 만들라고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재난 상황에 대응하는 더욱 강력한 컨트롤타워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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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같은 정부의 움직임이 법과 제도보다 운영의 문제를 지적하는 전문가들의 상황 판단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조원철 연세대 교수(방재안전관리 연구센터장)는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법과 제도를 운영해야 하는 데 이번 사고를 보면 그렇지가 못하다"며 "도대체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현장에 명령만 내리고 있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설치된 지 하루 만에 해체나 진배 없는 상황에 놓이게 것도 현장 지휘 등을 재난 전문가가 아닌 행정가가 맡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재난 관리에 있어서는 아마추어인 행정가들이 상황을 총괄하다 보니 가장 기본적인 승선인원과 구조자 수조차도 수차례 번복 발표되는 촌극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해양수산부와 안행부, 해경 등은 서로 손발이 맞지 않아 혼선이 거듭됐다.

매뉴얼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거나 지켜지지 않아 화를 키운 것은 비단 구조·사고처리 과정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 규모가 커진 것도 세월호의 운항관리규정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은 탓이 크다. 이 규정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선장이 선내 총지휘를 맡도록 하고 있다. 1~3등 항해사에게는 현장지휘ㆍ선장보좌·기록통신 등의 서로 다른 임무를 부여하고 있다. 다른 선원들은 구명보트를 띄우거나 사다리를 내리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정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역할과 기구의 성격은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우선 상황지휘ㆍ총괄은 현장 실무자에게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재난 상황 발생시 처리ㆍ대응과 관련된 권한은 전적으로 현장 실무자에게 줘야 한다"며 "중대본과 같은 컨트롤타워는 현장을 지원하는 업무만을 맡아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컨트롤타워는 재난 대응 과정에 직접 관여할 것이 아니라 예를 들자면 국방부에 함정과 비행기 지원을 요청하고 국토교통부에 교통안내를 지시하고 보건복지부에 심리지원을 요청하는 등의 재난 대응을 지원하는 역할만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은방 한국해양대 교수도 현장 실무자에게 모든 권한을 줘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 교수는 "육상이든 해상이든 재난 상황은 실시간으로 변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시간도 극히 제한돼 있다. 현장에 있는 사람이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만큼 현장 지휘자가 책임자가 돼야 하는 것은 상식"이라며 "상부 기관은 이들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현장 실무자에게 권한을 주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는 설명이다. 런던 테러 때 런던경시청이, 9ㆍ11테러 때 뉴욕 소방청이 상황을 진두지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컨트롤타워가 독립기구 형태로 설치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박달재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컨트롤타워는 특정 부처에 둘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기구 성격으로 설치돼야 한다"며 "특정 부처 소관으로 할 경우 담당자가 자주 바뀌면서 책임사항도 수시로 변경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른 부처와 협력을 위해서도 독립적인 기구로 설치돼 상시 운영되는 게 바람직하다"며 "안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만 반짝 모이고 다시 흩어지는 컨트롤타워는 또다시 사고가 발생해도 이번처럼 우왕좌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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