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의 종마 목장인 '샤다이 종마장'에는 말 동상 하나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것은 13년간 일본 리딩 사이어(Leading Sire·한 해 동안 자마들이 거둔 상금의 총합이 가장 많은 부마로 순위는 곧 씨수말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가 됨)를 고수했으며 일본의 경마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할 수 있게 만들어준 명마, 선데이사일런스(1986-2002)의 모습입니다.
켄터키 더비에서 우승한 부마 할로(Halo)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모마 위싱웰(Whishing Well) 사이에서 1986년 태어난 검은색 수말, 선데이사일런스는 트럭 사고와 바이러스 감염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며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데뷔하기 전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대단한 승부 근성은 첫 경주부터 숨길 수가 없었나 봅니다. 게이트가 열릴 때 두 무릎이 꺾이며 땅에 닿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것입니다. 그의 진가는 1989년 북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 켄터키 더비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여기서 당대 최고 실력을 자랑하던 이지고어(Easy Goer)와 만난 선데이사일런스는 보란 듯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2주 후 열린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에서 또 한번 이지고어를 물리치며 1승을 추가합니다. 특히 경기의 마지막 직선주로에서 펼쳐진 경쟁은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남을 만큼 유명합니다. 두 마리가 머리를 나란히 하고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다가 거의 동시에 들어와 결국 사진 판독까지 시행했는데 선데이사일런스가 코 차이로 앞서 도착한 것이 확인됐습니다. 이후 벨몬트 스테이크스에서는 이지고어가 이기는 바람에 안타깝게 삼관마 달성은 실패했어도 다시 브리더스컵에서 선데이사일런스가 우승하며 승부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통산 14전 9승, 2위 5회의 기록으로 경주마로서의 1막을 멋지게 장식한 선데이사일런스는 1991년 홋카이도에 있는 샤다이 농장에서 씨수말로 화려한 2막을 열게 됩니다. 2002년 죽기 전까지 1,514마리의 자마가 태어났으며 그 상금만 800억엔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자마들이 1등급 해외 초청 경주에서 우승함으로써 일본인들이 맛봤을 감동은 아마도 올림픽 메달 불모지에서 처음 우승했을 때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이웃 나라 일본은 선데이사일런스 같은 고가의 씨수말 도입과 훈련 수준의 향상 등을 통해 2007년 드디어 경마 선진국인 파트 1 국가로 진입했습니다. 선데이사일런스의 존재 자체가 일본 경마의 품질을 전체적으로 상승시켰다고 평가받는 것을 보면 우리가 해외에서 수십억원의 종마를 수입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밑거름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김정희(말박물관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