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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는 AIG그룹과 함께 63빌딩 약 3개를 합쳐놓은 규모로 여의도의 서울국제금융센터(IFC) 건설을 추진했다. 건물 완공 후 약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IFC의 3개 동 가운데 제2동은 거의 절반, 제3동은 대부분 입주자를 찾지 못해 비어 있다.
한때 대한민국 금융중심지(금융허브) 정책의 랜드마크로 꼽히던 IFC의 초라한 성적표다. 우리 정부가 금융허브로 발돋움하겠다고 청사진을 제시한 게 지난 2003년. 11여년 제자리를 맴돈 것이나 다름없다. 글로벌 금융회사와 투자자 눈에는 한국의 금융비즈니스 환경은 여전히 홍콩과 싱가포르 등 경쟁 도시들에 한참 뒤처져 있다.
IFC의 초래한 위상은 박근혜 정부가 시동을 건 위안화허브 육성정책에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지난 3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도출된 위안화허브 관련 정책합의가 제대로 빛을 발하려면 후속으로 한중 간 금융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양국의 추가적인 금융환경 정비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뜻이다.
위안화허브 구축을 위한 금융환경 정비의 최우선 과제는 규제완화다. 관광 관련 제도 문턱을 낮추자 요우커(중국 관광객)가 우리나라로 몰려온 것처럼 금융 관련 규제를 더 낮춰야 금융 요우커들을 유치할 수 있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홍콩·상하이 등 경쟁 금융허브 도시들과 비교해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며 "위안화 관련 금융상품의 개발과 유통 등을 막는 규제는 없는지 전반적으로 리스트를 만들어 점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규제완화 중에서도 '한국판 딤섬본드' 발행 허용은 최우선 과제다. 딤섬본드란 중국기업이 홍콩에서 발행하는 위안화 표시채권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홍콩에서와같이 중국기업이 직접 위안화 표시채권을 발행해 경영자금 등을 조달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금융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 대형금융사의 임원은 "홍콩·싱가포르 등 중국 역외에서 구축된 위안화허브를 보면 현지 위안화 자금조달 수요자의 대부분이 중국 본토기업"이라며 "우리나라에서도 중국 본토기업들이 직접 자국 통화 표시채권으로 돈을 빌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위안화허브로 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한국판 딤섬본드는 우리나라와 중국 양국이 모두 규제를 풀어야 가능하다.
외국환관리 규정도 손질해야 한다.
원화의 국제화가 미흡한 상황에서는 원·위안화 직거래 시장을 비롯한 위안화허브 기반이 구축되더라도 위안화 쪽으로만 자금수요가 쏠리는 시장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유념할 대목이다. 결국 원화의 국제 거래를 확대하기 위한 규제 정비도 뒤따라야 한다는 의미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박사는 "현재 외국인들은 원화로 자금을 자유롭게 빌려서 국내에서 거래하거나 투자하는 데 제도적인 제약을 받고 있다"며 "이 같은 규제는 환투기 우려 때문인데 금융시장의 발전에 무게를 둔다면 관련 규제를 점진적으로 합리화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고 전했다.
위안화허브를 넘어 글로벌 금융허브로 도약하기 위해 파생상품투자 규제, 자산운용업 규제 등도 점진적으로 재정비돼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중 자산운용업규제와 관련해서는 개별 조항보다는 전체적인 규제방식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한 금융지주사 간부는 "우리나라는 자산운용규제는 세부적으로는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법이 일일이 명시한 행위만 허용되는 열거주의(포지티브) 방식이어서 금융상품과 마케팅의 창의적 개발과 운용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자산운용규제를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는 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산운용에 대해 법이 금지하도록 명문화한 것 이외에는 원칙적으로 다 허용하는 식의 규제완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국내 자산운용사에 대한 역차별은 없는지 살펴봐야 할 필요도 있다. 예컨대 과거에는 자산운용업에 대한 출자 자격으로 국내 법인에 대해서는 300% 이내의 부채비율을 요구했지만 외국인에 대해서는 부채비율 요건이 전무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중국 측의 자본시장 개방을 유도하기 위한 당국 간 노력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