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7월 21일] <1754> 싱가포르 폭동


1964년 7월21일 오후5시, 싱가포르. 예언자 무함마드 알리의 탄신을 축하하는 말레이계 2만5,000여명의 행렬 일부에서 구호가 터져 나왔다. ‘중국인은 물러가라!’ 경찰이 해산을 요구하자 군중 전체가 시위대로 변했다. 경찰에게 돌을 던지고 중국인을 공격하는 시위대를 찾아온 당시 41세의 리콴유(李光曜) 주지사가 트럭 위에 서서 냉정을 찾자고 호소했으나 소용없었다. 통행금지령 속에서도 말레이계와 중국계는 서로를 죽이고 건물과 차량에 불을 질렀다. 11일 동안 계속된 폭동으로 건물 수백채가 불탔다. 인명피해도 컸다. 36명이 죽고 556명이 다쳤다. 시위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정설은 중국계의 부상에 대한 말레이계의 불만. 인구의 7할이 중국계인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연방에 합류(1962년)한 데 이어 1964년 치러진 총선에서 단 한석이지만 의회에 진출하자 상권을 장악한 중국계가 정치까지 잠식해온다는 경계심리가 폭동의 불을 댕겼다. 싱가포르의 민족 간 분규는 9월 초에도 재연돼 13명이 숨지고 10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말레이연방이 제시한 궁극적 해결책은 싱가포르의 독립. 쫓겨나다시피 연방을 탈퇴한 싱가포르는 곧 망할 것 같았지만 웬걸! 성장가도를 달렸다. 1969년 재발한 폭동도 넘어섰다. 오늘날 국민소득 4만달러대의 부자나라임에도 고속성장세는 눈부실 정도다. 2ㆍ4분기 성장률은 20%에 육박했다. 성장의 비결에는 소통의 노력이 깔려 있다. 아버지에 이어 싱가포르를 통치하는 리센룽 총리는 다섯살 때부터 말레이어를 익히고 말레이시아 신문을 읽으며 자랐다. 깨끗한데다 소수까지 감싸려는 권력이 없었다면 싱가포르는 분열로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싱가포르의 성공에는 갈등극복의 역사가 숨쉰다. 위기는 기회일 수도 있다. /권홍우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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