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안토니 카로는 차를 타고 부인과 함께 킹스크로스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도약하는 말 몇마리가 만물상 앞 인도에 모여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말을 쳐다보면 카로는 말을 탄 거친 사나이들이 런던 거리에 서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말은 코를 실룩거리며 제 자리에서 타가닥거리고, 쟁그렁거리는 굴레 소리와 둔탁한 무기 소리가 귓전에 울린다. 순간 카바피의 유명한 시 `야만인을 기다리며(Wating for Barbarians)가 떠올린다. 길에 있는 런던 사람들은 어느새 야만인의 공격을 목전에 둔 운명주의, 낙관주의, 두려움으로 가득한 무기력한 알렉산드리아인으로 변한다.
그러던 어느날 카로는 체육관 길가 쓰레기장에 버려진 체조 뜀틀을 보고 구상중인 `야만인들`의 말 몸통으로 쓸 것을 생각하고 버려진 뜀뜰 수십여개를 그자리에서 사버렸다. 이후 그의 작업실에는 말을 탄 사나이와 마차, 수마리아, 이집트 및 중국인, 르네상스 시대 상인, 중세 기사, 훈족, 고트족 등의 조각상으로 가득찬다.
영국 큐레이터 데이브 힉키가 전하는 카로의 말 조각의 시작이다.
헨리 무어 이후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조각가 안토니 카로는 그동안 몇차례의 국내전을 통해 철로 만든 미니멀적인 추상조각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의 변화된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려 화제다.
서울시립미술관 3층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안토니 카로-The Barbarians`전이 그것이다. 그의 이번 전시는 1998년 서울 사간동 국제화랑 전시에 이어 열리는 것으로 지난 50여년간 지속해온 철로 만든 미니멀적 추상조각에서 탈피해 목재와 도자, 테라코타 등을 사용, 재료를 다양화하고 구상성을 도입한 최근작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입구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는 7개의 작품으로 구성된 `야만인들(The Barbarians)` 연작은 아시아권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으로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1999년부터 제작기간 3년이 소요된 `야만인들`은 종래까지 카로가 제작해 왔던 추상조각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며 그의 관심이 구상적이고 서사적이고 보다 대중적인 작품으로 옮겨왔음을 보여준다.
테라코타, 목재, 가죽, 강철 등으로 만들어진 `야만인들`은 `골롬` `사닥` `슐드` `카자르` `질루` `도루` `카삭`의 이름이 붙어있다.
말의 역할을 하는 뜀틀 위에 오른채 창을 휘두르고, 화살을 겨누고, 채찍을 휘두르는 `야만인들`의 모습이 역동감과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7인의 야만인들의 모습은 구체적 인물상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머리, 다리, 몸통, 팔 등의 부분을 따로 제작해 스튜디오에서 짝을 맞추어 구성했다. 이 작품들은 서로 모여 조화를 이루며 스펙타클과 같은 장엄함을 연출한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의 왕성한 호기심과 실험정신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에는 `야만인들`외에 `비밀의 계단` 등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제작된 추상작품 5점이 선보인다.(02)2124-8971
<박연우기자 ywpar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