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낙과와 착한 소비


지난 여름 태풍 '볼라벤'과 '덴빈'이 쓸고 간 상처가 아직 아물지도 않았는데 추석을 코앞에 두고 '산바'가 한반도를 다시 강타해 피해가 속출했다. 덩달아 안정세를 보이던 추석 물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사라와 매미, 루사 등 한반도를 강타한 대형 태풍이 왜 꼭 추석 전에 발생하는지 원망스럽다.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했는데도 태풍 같은 자연재해에 조금 빠른 예보와 사후대처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무력함과 자연의 엄청난 힘을 실감한다. 답답한 마음에 우리 조상들이 수재ㆍ화재ㆍ풍재 등 세 가지 천재지변을 피하기 위해 이용했던 부적인 '삼재소멸부(三災消滅符)'라도 붙여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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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전쯤 추석 물가점검을 위해 어느 전통시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가격은 좀 올랐지만 크고 탐스러운 과일을 보니 그 모진 폭우와 태풍에도 씩씩하게 자라준 모습이 고맙고 대견했다. 9만8천톤에 달했던 낙과도 걱정스러웠는데 다행히 최근 대형유통업체와 협동조합, 지자체의 낙과 팔아주기 운동 덕분에 물량이 조기에 모두 소진됐고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였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낙과를 구매한 사람들, 물량이 없어 발길을 돌린 모든 이들이 착한 소비자들이다. 이들 덕에 낙과와 함께 땅에 떨어졌던 피해 농민들의 꿈이 다시 탐스런 과실처럼 영글었으면 한다.

낙과 구매처럼 물건을 사면서 동시에 뜻깊은 일을 할 수 있는 이른바 '착한 소비'가 국내에서 빠르게 늘고 있다. 저개발국가 농민을 돕는 커피와 초콜릿, 수익금의 일부를 비영리재단에 기부하는 화장품, 결식아동을 돕는 팔찌 등이 잘 팔리고 있다. 빵을 만들기 위해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고용하기 위해 빵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환경과 사회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소비생활을 하는 것을 착한 소비라고 한다면 우리 땅과 지역에서 난 농산물을 구입하는 것이 그 출발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의 제사에 감 놔라 배놔라 하지 마라'는 말이 있다. 추석 차례상을 차리는 방식은 지역과 가족별로 다양할 수밖에 없다. 바다가 가까운 지역에서는 해산물이, 산간 지역에서는 나물을 이용한 음식이 상에 많이 오른다. 오래 전부터 쌀농사가 어려웠던 제주에서는 떡 대신 빵을 차례상에 올린다고 한다. 지역별로 음식은 다양하지만 선조들이 살았던 지역에서 생산된 음식으로 정성을 차리는 것이 조상들에 대한 예라고 생각했던 점은 모두 같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농산물로 차례상을 준비하는 착한 소비의 전통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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