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모두 단기 이익에 앞서 기업경쟁력과 생산성ㆍ고용ㆍ분배 등 장기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회 대타협의 스웨덴 모델의 권위자인 랄시 막누손(53ㆍ사진) 웁살라대 부총장은 한국에서 온 취재진에게 대뜸 각각의 경제주체들이 작은 욕심부터 버려야 큰 목적을 이룬다고 충고했다. 노ㆍ사ㆍ정 간의 사회협약을 토대로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복지확충의 세마리 토끼를 잡아 복지국가를 만든 스웨덴의 경제발전 방식은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또 다른 길잡이. 서울경제 취재진이 웁살라대학을 찾았던 지난 2월18일 교정에는 어둠이 일찍 내렸다. 시계는 겨우 오후5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사방이 캄캄했다. 백열등을 환히 밝힌 웁살라대 캠퍼스에 자리잡은 막누손 부총장의 연구실은 온통 책과 인쇄물로 가득해 앉을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막누손 부총장은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도 스웨덴처럼 산업화가 늦은 공통점이 있다”며 “스웨덴이 사회적 대타협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각 경제주체들이 당장 눈앞에 있는 이득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인 목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소박한 학자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3~4평 남짓한 공간에서 막누손 부총장은 상당히 빠른 어조로 사회적 합의, 성장과 분배, 리더십 등에 관해 열변을 토해냈다. -지난해 11월 북구모델 학술포럼 참석차 한국과 일본ㆍ중국을 방문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은 대통령 선거 직전이었을텐데 한국의 발전모델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습니까. ▦한국의 국가전략은 단결해 경제발전을 이루고 이를 통해 복지를 실현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스웨덴과 공통점이 많이 있습니다. 산업화 역사가 길지 않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스웨덴은 1930년대까지 갈등과 충돌이 심했습니다.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겪어야 하는 성장통인 셈이죠. 한국도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를 시작했고 그동안 갈등이 많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발전 과정이 유사하다는 지적에 공감이 갑니다. 그런데 스웨덴은 이미 70년 전에 살트셰바덴 대협약을 맺어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복지국가 건설의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비결이 궁금합니다. 한국의 노사 양측은 자기 것만 지키려 하고 합의를 잘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1940년대 이후, 즉 살트셰바덴 협약 이후에도 크고 작은 의견충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협약을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었던 것은 장기 목표에 대한 합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근로자 측이 대승적인 관점에서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 행동했습니다. (당시 근로자, 즉 노총의 힘이 훨씬 우세했음에도 양보를 한 것을 지적한 말이다.) -안 그래도 오늘 아침 살트셰바덴에 가서 대협약의 현장을 보고 왔습니다. ▦그랬군요. 아주 좋은데요. 당시는 파업이 빈발해 산업성장이 저해됐던 시절이지요.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을 못해 타격이 컸고 근로자는 임금도 제대로 받기 힘들었습니다. 양측 모두가 손해였습니다. 직전에는 대공황이 발생했고 나치당 출범도 있었지요. 이런 외부적 요인 때문에 갈등은 내전으로 비화될 수 있었고 위기상황에서 스웨덴 국민들은 문제를 나라 안에서 해결해야겠다고 합의한 것입니다. -살트셰바덴 협약, 즉 사회적 대타협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말하긴 어려운 부분인데 한마디로 스웨덴의 산업화, 생산성과 사회보장의 질 향상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살트셰바덴 협약은 노사 모두 장기적인 목표를 공유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지적했는데 스웨덴이 컨센서스를 이뤘던 장기적인 목표가 무엇이었나요. ▦단기적으로는 의견차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목표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했습니다. 장기적인 목표는 성장과 복지였습니다. 성장이 없으면 복지도 없다는 걸 노사 모두 잘 알았죠. 그래서 경제성장과 새로운 기술, 생산성 향상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산업 고도화가 필요하다는 게 공통된 인식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스웨덴의 노총(LO)은 새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경제가 발전하면서 산업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하고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체가 문을 닫는 것을 발전의 과정이라고 봤습니다. -근로자들이 해고ㆍ감원 등으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스웨덴 노총이 감수했다는 건가요. 한국은 아직 성장이냐 분배냐의 논쟁이 치열합니다. ▦그래서 분배와 함께 가는 발전이 중요합니다. 과거 스웨덴에서 발전만 내세웠다면 산업 재조정을 할 때 노동자들이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성장을 하면 나중에 저절로 분배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는 게 가능한지 의문입니다. 분배를 잘하지 못하면 성장도 이룰 수 없습니다. 1980년대 영국은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복지를 축소하는 등 성장 우선주의 정책을 폈습니다. 그때 스웨덴 모델에 대해 의문이 많았고 스웨덴 역시 복지를 축소해야 한다고 얘기들을 했습니다. 스웨덴은 그렇게 하지 않았죠. 대신 분배를 하면서 성장을 했습니다. 이 결과 지난 10년간 유럽연합(EU)국가 중에서 스웨덴의 성장률이 높은 편에 속합니다. 발전 먼저 하고 분배를 나중에 한다는 건 좋은 방식이 아닙니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방향타를 잃지 않으려면 강력한 리더십이 노사 양측에서 필요했겠는데요. ▦리더십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협약 당시도 그렇고 이후에도 극좌파나 공산주의 노조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동운동 리더들은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노선을 택했고 대다수 노조원들은 이들을 따랐습니다. 사용자 측을 보면 스웨덴기업연합(SAF)의 핵심은 철강ㆍ기계공업 기업주였습니다. 대기업 사용자였는데 이들은 산업화와 경제성장ㆍ복지를 중시하는 거시적이고 대승적인 관점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발렌베리입니다. -발렌베리의 리더십은 어떠했습니까. ▦발렌베리는 SAF에서 주요 직책을 맡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노총과 자주 만나 대화했습니다. 발렌베리는 사민당과도 경제 이슈를 놓고 자주 토론했습니다. 산업화 초기단계에서 경제ㆍ산업정책을 함께 협의할 일이 많았던 것이죠. 무엇보다 국가적 부를 창출해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보장을 이루는 데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부를 과시하는 현재의 중국 부자들과 달리 발렌베리는 부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중국과 미국의 부자들은 부를 과시하고 성공을 보여주려고 들지만 스웨덴을 포함해 유럽의 부자들은 이런 행태를 부끄러워합니다.(웃음) -스웨덴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발렌베리 등 소위 재벌의 소유권을 보장해줬습니다. 차등의결권 등이 그 방법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스웨덴의 경험으로 볼 때 대기업의 소유권을 인정(가족지배 또는 경영권 승계 보장)해주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업은 개인이 소유하지만 분배 메커니즘이나 고용 등은 규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근로자를 함부로 자르지 못하게 하는 것 등입니다. -신뢰, 준법, 약자에 대한 배려와 같은 사회적 자본이 사회적 대타협,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 거 아닌지요. ▦사회적 신뢰도 매우 중요합니다. 협력의 정신과 사회적 신뢰, 부자들의 처신 등이 사회적 대타협을 가능하게 한 요소였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스웨덴 국민들이 대부분 자영농이어서 평등의식을 갖고 있었던 점도 복지국가 형성에 영향을 줬다고 봅니다. -끝으로 한국에 대해 조언 한마디 해주시지요. ▦매우 어렵네요.(그는 한참 동안 생각을 정리했다.) 노사 모두 장기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기업들이 장기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기업이 나쁘다는 인식을 버려야 합니다. 다만 장기적인 목표로 나아가도록 필요한 규제를 해야겠죠.
랄시 막누손 부총장은 성장·복지 동시 추구 '스웨덴 모델' 권위 랄시 막누손 웁살라대 부총장은 500년 전통의 스웨덴 웁살라대학교의 부총장이자 경제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 1477년에 설립된 웁살라대는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명문대학이다. 막누손 부총장은 스웨덴 경제사 및 모델에 대한 권위자로 스웨덴국립은행이 알프레드 노벨을 기리기 위해 만든 스웨덴경제학상 심사위원이자 SALTSA 프로젝트의 수장이기도 하다. SALTSA란 스웨덴생산자노총(LO), 전문직노총(TCO)과 함께 세계화 속에서 노동계층의 향후 전망을 연구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스웨덴 경제사' '경제언어의 형성' '자유무역의 전통'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성장과 복지를 함께 추구하는 스웨덴 모델에 대해 집중 연구해온 그는 SALTSA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실천적인 연구활동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그러나 자본과 노동 어느 편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막누손 부총장은 최근 세계화에 대한 노르딕 모델의 대응과 변화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학술포럼에 참석, '글로벌화 세계에서의 스웨덴 노동시장'이라는 제목의 주제발표에서 "스웨덴 체제에 대한 세계화(신자유주의)의 압력이 점증하고 있지만 최근의 경험으로 볼 때 스웨덴 모델은 지속 가능(sustainable)하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그는 "스웨덴이 최근 몇년 동안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과 복지, 그리고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1930년대 이후 유지해온 제도적 특징 덕"이라며 "제도적 틀 근저에는 강력한 사회적 파트너들이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웁살라대에는 예술ㆍ사회과학, 의학ㆍ약학, 과학ㆍ공학의 3개 학부가 있으며 4만명의 학생(시간제 포함)이 수강하고 있다. 매년 약 4,000명의 학부, 대학원 졸업생이 배출되고 있으며 정교수 500명을 비롯, 4,000여명의 강사ㆍ연구원 등을 포함해 6,000여명의 교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