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문제가 악화되면서 증권가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작 북핵문제가 위기국면으로 치닫던 지난달에는 시장이 '잠재변수'로 받아들이는 정도에 그쳤지만 최근 시장의 체력이 저하되면서 이 문제가 빠른 속도로 증시의 '핫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4월 어닝시즌 이후 기업실적과 펀더멘털, 수급 등을 토대로 시장전망을 내놓던 국내외 증권사들도 앞다퉈 북핵 전개 시나리오와 시장에 미칠 파장을 저울질하고 있다.
◆ 시장에 아직 반영 안됐다= 지난 1993년 북한이 핵확산 방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이후 북한의 핵문제와 관련된 충격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시장은 그다지 큰영향을 받지 않았다.
12일 삼성증권에 따르면 지난 1993년 3월 북한의 NPT탈퇴 선언일 당시 주가는오히려 12포인트 상승했다.
2002년 12월 북한이 핵동결 해제를 선언하고 이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추방했을 당시 주가는 연말까지 7% 가량 급락했지만 당시는 이라크전을 앞두고세계 증시가 조정을 받던 시점이어서 북핵문제가 주가급락을 이끌어냈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 이듬해 10월 북한이 핵 연료봉 재처리 완료를 발표했을 당시에도 주가는 1.5% 상승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시장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며 '북핵'이 이미 주가에 반영됐거나 과거처럼 별 영향없이 넘어갈 것으로 단언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남우 메릴린치 서울지점 리서치센터장은 11일 보고서에서 "아직 주가에 북핵리스크가 반영되지 않고 있으나 내달 말까지 6자 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이 낮은 등북한과 미국이 적절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만큼 위험이 고조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풋옵션을 매수하는 방어적 투자전략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삼성증권 유승민 연구위원도 "이번 상황은 북한이 핵개발에 한 발 다가선 경험해보지 못한 환경"이라며 "증시가 이번에도 '북핵'에 무관심할 것이라고 단정하기힘들며 예측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는 점에서 시장은 이를 '잠재 리스크'로 인식하며추이를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 핵실험시 충격 '메가톤급'= 과거 북한 핵문제가 NPT탈퇴 선언이나 핵 사찰단추방 등 '선언적 성격'을 띈 것이었지만 실제 핵실험이 이뤄질 경우 주식시장에 '메가톤급' 충격은 불가피한 것으로 관측된다.
핵실험이 있을 경우 곧 미국의 해상, 공중 등을 통한 대북 봉쇄나 정밀 타격 등으로 이어지면서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 금융시장이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시장이 유사한 상황을 맞은 적이 없기때문에 그 파급효과를 예단하기는 대단히 어렵지만 지난 1998년 인도와 파키스탄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핵실험이 실시됐을 당시 양국 증시의 반응을 통해 간접적으로 충격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다.
메리츠증권의 자료에 따르면 인도가 1998년 5월12일 핵실험을 한 뒤 인도 증시의 BSE30 지수는 이틀간 5.9% 급락한 뒤 계속 떨어져 3,000선 밑으로 밀려났다가 1년이 지난 1999년 5월13일에야 4,000선으로 복귀했다.
인도에 이어 파키스탄이 5월17일 핵실험을 실시하면서 파키스탄 증시의 카라치100지수도 11일 종가 1,514.1에서 사흘간 100포인트 이상 급락했고, 인도에 맞서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실시한 다음날인 5월18일 1,400선 밑으로 밀려난 증시는 다음달말에는 800선 초반까지 주저 앉으며 '반토막'이 났다. 카라치100 지수가 1,500선을회복한 것은 2000년 1월이었다.
삼성증권 유 연구위원은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는 경우 외국인 자금의 이탈이가시화되고 금융시장 전반이 '패닉'에 빠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교착국면이 지속되는 시나리오 하에서는 주가 급락이 매수기회가 될 수 있지만 비관적 시나리오 하에서는 전망과 투자전략 수립 자체가 어렵다"고 분석했다.
◆ "최악국면까지는 안갈 것"= 물론 시장에서는 사실상 전쟁 국면 돌입을 전제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상정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상황이 그 정도로 악화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메릴린치는 북핵 변수가 주가에 반영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지만 "북한이 중국의 뜻을 거스르고 실제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은 20∼30%선"이라고 주장했다.
인접국의 전쟁을 원치 않는 중국이 결국 북한에 미국과의 합의 도출을 위한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신증권 함성식 연구위원도 "북핵 문제가 예측 가능 범위에서 약간은 벗어나있고 불확실성이 점차 고조되고 있어 부담"이라면서도 "외평채 금리의 안정이나 외국인의 순매수, 환율 안정 등을 살펴볼 때 아직은 통제가능 범위에 있으며 후진타오중국 주석의 북한 방문일정이 확정되면 북핵 악재는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삼성증권 유 연구위원 역시 "최근 북핵 위기가 비관적.부정적 시나리오 쪽으로전개되고 있지만 '낙관적 해결' 또는 '교착국면 지속'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며 "비관적 시나리오 전개시 주변국 누구에게도 실익이 없기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정부의 다각적 노력으로 '6월 위기'의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6∼7월중 원만한 해결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실제 위기는 8∼9월에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