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간접투자시대]기관이 살아야 증시 산다
기관비중 40%는 돼야 '증시 버팀목'
>>관련기사 5년내 5조~10조원 증시유입
"국내 주식시장의 안정과 발전은 기관투자가에게 달렸다."
증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외국인에 의해 휘둘리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하루 이틀의 문제도 아니고 해법도 나와있는데 바뀌는 게 별로 없다.
투자자들은 간접투자보다 리스크가 많은 직접투자를 선호하고 정부차원에서도 이렇다 할 기관 육성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관도 제 역할을 찾지 못하고 단기차익을 따먹는 거대한 데이트레이더로 전락하고 있다.
김병포 현대투신운용 사장은 "기관을 육성하지 않고는 자본시장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며 "선진국과 같이 기관에 투자자금이 몰리도록 해 기관이 힘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연기금 등 기관자금의 주식투자 비중을 확대하고 장기 자금인 기업연금을 주식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99년 '바이코리아'의 열풍을 몰고 왔던 최대 기관투자가인 투신권에 힘이 실려야 증시 체질이 개선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간접시장이 살아나야만 국내 주식시장도 더불어 도약할 수 있다는 말이다.
▶ 기관은 증시 안정성장의 버팀목
'기관이 살아나야 증시가 산다'라는 말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지난 99년 초 400대의 지수를 불과 몇 개월 만에 1,000포인트로 끌어올린 원동력은 바로 기관투자가의 힘이었다.
특히 기관의 맏형격인 투신사들은 대규모 자금을 앞세워 '바이코리아'의 열풍을 일으키며 주식시장의 든든한 안전판 역할을 했다.
개인들은 돈을 들고 간접상품에 앞 다퉈 가입했고, 투신사는 그 자금을 바탕으로 큰 손으로 부상하며 주가를 무섭게 끌어올렸다.
주가 상승은 고스란히 간접투자자들의 고수익으로 돌아오는 선순환으로 이어졌다. 연 100% 이상의 수익률을 과시했던 미래에셋의 '박현주 펀드'신화도 당시에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99년을 '기관화 장세'의 위력을 한껏 보여준 해였다고 평가한다.
연초 600선의 주가가 지난 4월 940포인트까지 치고 올라갔을 때도 기관이 큰 몫을 했다.
연초 6조원대의 순수주식형펀드에 2조여원 이상의 자금이 몰리며 투신권에 충분한 매수 여력을 제공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자금유입이 주춤해지면서 기관의 '칼날'도 무뎌졌다.
이후 주가는 600선에서 횡보세를 이어가고 있다. 기관이 버팀목 역할을 제대로 해야만 주식시장이 흔들리지 않고 제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기관의 현실
다들 기관 육성이 증시활성화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기관은 '이빨 빠진 종이 호랑이'로 전락한 신세다.
개인투자가들 사이에선 '기관은 없고 거대한 데이트레이더만 있을 뿐'이라는 비아냥 섞인 말이 나오고 있다.
외풍에 맞서 장기투자로 시장을 지탱해야 할 기관이 안전판 역할을 하기는 커녕 오히려 단타를 자행하며 시장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비난이다.
실제로 최근 기관들은 매매에 손을 놓은 지 오래고, 현ㆍ선물 격차에 따른 무위험수익만을 노리며 프로그램매매에만 열중이다.
이 같은 문제점의 출발은 기관의 주식비중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연기금 및 투신 등 국내 기관투자가의 주식보유 시가총액비중은 15%.
외국인(36%)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빈약한 수준이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 기관투자가의 비중이 50% 이상인 것과 크게 대조된다.
이러다 보니 국내 증시는 갈수록 외국인에 좌지우지되는 증시 속국이 돼버렸다. 방철호 다임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 부사장은 "현재처럼 외국인의 힘이 거대화한 투자환경에서는 기관 운신의 폭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며 "기관이 제 자리를 못 찾는 한 국내 증시의 안정성장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 기관 육성 적극 나서야
결국 주식시장의 튼튼한 토대를 갖추기 위해서는 기관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게 증권가의 주문이다. 이를 위해 ▲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 등 제도개선 ▲ 기업연금제 도입 ▲ 개인연금의 투자신탁비중 증대 등이 선결과제로 거론되고 있다.
우선 장기자금인 연기금 투자를 선진국처럼 대폭 늘려 기관의 주식보유 비중을 늘리고 투자의 장기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병포 사장은 기관 비중을 최소한 4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재환 민주당위원은 "지난해말 현재 75개 연기금 중 41개가 기금관리법상 주식투자 금지 대상으로 묶여있는 등 공공기금(300조여원)의 주식투자 비중이 3% 미만"이라며 "관련법을 서둘러 고쳐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크게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과 같은 기업연금제 도입이 절실한 실정이다. 고광수 한국증권연구원 박사는 "퇴직금 제도가 미국의 기업연금제도인 401k처럼 주식에 투자할 수 있도록 전환된다면 종업원의 노후생활 보장과 함께 직ㆍ간접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재 20조원을 넘어선 개인연금 자원 중 5% 미만의 투자신탁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특별취재팀■
홍준석ㆍ김정곤ㆍ이재용ㆍ김상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