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슈 인사이드] 자녀 폭행·학대해도 법적 처분 미약해 재발 이어져

가정보호사건 해마다 증가세 접근 금지 등 처분 내려져도 '가정보호' 차원 강력수단 못써<br>집에서 폭행 경험·목격한 아동 청소년 범죄 이어지는 경우 많아 강력한 처분으로 실효성 높이고 공동체 책임 인식 확산 시켜야




'가정(家庭)이라는 울타리'가 위협받고 있다. 위험의 진원지는 울타리 밖이 아니라 안이다. 가족의 폭력으로 얼룩진 가정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전국 법원에 접수된 가정보호 사건은 지난 2008년 3,132건에서 2009년에는 4,714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후 작년까지 매해 3,000건 이상 접수되고 있다. 가정보호 사건이란 가정 내 폭력이나 불화 등의 사건이 접수되면 조사와 심리를 통해 필요한 법적 조치를 내리는 것이다.


이 중 부모가 자녀를 폭행ㆍ학대하는 경우는 바깥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가정법원에 접수되는 가정보호 사건 10건 중 2~3건 정도가 부모의 폭력 사건이지만,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사례가 많을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40대인 A씨는 이혼 후 10대인 딸과 아들을 키우면서 딸이 늦게 집에 들어왔다며 머리카락을 밀어버리는 등 가혹행위를 해 오다가 지난해 법원으로부터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에게도 '강하게 커야 한다'며 무리한 스트레칭을 강요하는 등의 또 다른 가혹행위를 하다가 다시 재판에 넘어왔다.

B씨는 부인과 말다툼을 하던 10대인 딸이 부인을 째려봤다는 이유로 칼을 들어 딸을 위협하고 두 손으로 목을 졸랐다. 옆에 있던 어머니는 딸의 무릎을 걷어 찼다. 이들 부모는 이전에도 큰 딸을 폭행해 아동 학대신고를 당한 적이 있다.

가정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가정법원은 가정보호 사건의 심리를 진행한 뒤 ▦ 가족 구성원에 대한 접근 제한 ▦ 휴대전화 등 전기통신을 통한 접근 제한 ▦ 피해자(자녀)에 대한 친권행사 제한 ▦ 사회봉사ㆍ수강명령 ▦ 보호관찰 ▦ 감호위탁 ▦ 상담소 상담 위탁 등의 처분을 내리게 된다.

문제는 이런 조치들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폭력을 행사한 아버지가 접근 제한 처분을 받은 후에도 피해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쉼터)로 간 자녀를 찾아가 위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접근 금지 처분은 법 상 강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친권행사 제한 역시 한계를 지닌다. 실제로 피해 자녀들, 특히 편부모 가정의 자녀들은 폭력 부모가 처벌을 받는 것까지 이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갑작스런 '보호자의 부재'로부터 오는 혼란과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이다. 때문에 법원에서도 친권 제한 처분을 내리는 경우는 드물어 2010년의 경우 전국 법원에서 처분한 친권 제한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상대적으로 강력한 처분에 해당하는 감호 위탁은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국내에 폭력 행위자를 위탁할 감호시설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관계자는 "위탁 시설이 없어 감호위탁 대신 의료기관에 치료위탁을 맡긴다" 면서 "법에는 규정돼 있는데 집행할 수 없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대부분 상담이나 수강, 사회봉사 등 경미한 처분이 내려지고, 보호관찰이나 수강시간을 늘리는 것 외에는 강력 수단이 거의 없는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처분이 미약한 데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 가정법원 판사는 "가정보호 사건을 다룰 때 일차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말 그대로 '가정의 보호'"라고 설명했다. 보통 피해자들이 폭력 행위자의 처벌을 원치 않아 우선적으로는 가정이라는 틀을 깨지 않으려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미약한 처분은 외려 가정폭력의 재발로 이어져 가정보호가 우선이라는 법의 취지를 해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50대인 한 남성은 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해 한차례 기소됐는데, 이후 또 다시 법원으로부터 상담 위탁 처분을 받았고 얼마 안 가 또 폭력을 휘둘러 법원에 불려왔다. 상담소에서의 태도 역시 불량했다. 법원 조사관이 전화를 걸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거나 아예 조사관실 앞에서 난동을 부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가정에서의 폭력이 청소년 폭력으로 전이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직접 폭행을 당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폭행을 목격해 온 아동ㆍ청소년들은 심각한 정서적, 심리적 불안을 겪는다. 또 낮은 자아 존중감, 무력감, 죄의식과 더불어 적개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가족부의 2010년 가정폭력실태조사를 연구한 김재엽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장은 "가정 폭력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일반 학생에 비해 2~3배 정도 높다"고 밝혔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실제로 온 가족이 법원에 재판을 받으러 온 적이 있는데, 부모는 배우자 폭행으로 인한 가정보호 사건 때문에, 자녀는 가정 불화로 인한 소년범죄로 온 것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처럼 가정 폭력이 빚어 내는 부정적인 영향은 가정 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피해 자녀에게 옮겨져 결국 청소년 범죄라는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가정보호 사건에 대한 법적 처분의 실효성을 높이는 대책을 마련 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가정 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가정폭력은 공동체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커져도 법적 처분이 유명무실하다면 그 노력은 '모래 위에 쌓은 성'이 될 가능성이 있다.


"남의 일이라 신고 귀찮다" 절반 주변 이웃서 먼저 관심 가져야
가정보호는 물론 법적 처분만 강화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모든 문제가 그렇듯 다각적인 해결 시도가 동반돼야 비로소 가정이 보호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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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경찰의 현장조치권한이 강화됐다.

현장 경찰관은 판단에 따라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등 긴급 임시조치를 결정할 수 있고, 종전에는 사전에 법원의 판단이 반드시 필요했지만 이제는 조치를 취한 후 법원의 판단을 물어도 된다.

그러나 이웃 주변의 신고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면 현장 경찰관의 권한 강화도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여성가족부의 2010년 가정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이웃에서 가정폭력이 발생한 경우 '남의 일이라 신고하기 귀찮다'고 답한 사람이 절반에 달했다.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경찰의 긴급 임시조치 결정권이 생겼다지만 현장 출입조사를 할 수 있는 정도라 문을 부수고 들어갈지 말지 판단하기 애매할 것" 이라며 "이럴 때 주변에 있던 이웃이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한다면 경찰관의 판단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소년ㆍ아동에 대한 폭력이나 학대 사실이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어머니의 침묵'이다. 자신이나 자녀가 폭행을 당했을 때 "나 하나 참으면 끝난다"고 여기는 여성이 많은 탓에 자녀가 맞는다는 사실도 가려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가정폭력 상담소 '희망의 전화'의 한 상담원은 "여성들이 가정 폭력 문제로 전화를 걸어오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게 현실"이라면서 "가정폭력은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물론 당하는 사람도 변해야 문제 해결이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정에서 벌어지는 폭력 중 정서적 폭력이 훨씬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사실도 피해자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서울 지역에서 접수된 가정폭력 상담 830건을 분석한 결과 '정서적 폭력'이 47%로 가장 높았다. 정서적 폭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피해자의 능동적인 대처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폭력 행위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 이유는 경제력과 직결돼 있다. 가정폭력이 발생하는 가정의 경우 아직까지 남편이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실은 악몽 같지만, 경제적 여력이 없는 상황 때문에 악몽을 인내하는 피해자가 가정폭력을 심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서울가정법원 이현곤 판사는 "법적 처분을 강화해 폭력 행위자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이후의 일에는 법원의 손이 닿을 수 없다" 며 "정의를 휘두르기는 쉽지만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라고 강조했다.


조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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