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론/4월 7일] 지식생산 '전쟁시대'

우리나라 근현대 경제사는 '무역의 역사'라 할 만하다. 천연자원은 고사하고 먹을 것도 없던 절대빈곤의 시절 우리는 '수출만이 살 길'이란 구호 아래 똘똘 뭉쳐 밤새워 일했고 결국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이듬해 39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냄으로써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고 2008년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중국ㆍ동남아 등 신흥시장 공략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그 결과 지난해 우리는 세계 수출순위 9위, 402억달러의 사상 최대 무역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고 자유무역주의를 주창해 오는 11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할 수 있게 됐다. 국내기업 특허괴물에 먹잇감 비록 우리가 무역으로 성장한 국가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역이 말처럼 쉬운 분야는 아니다. 최근 주목할 것은 반덤핑 제소 등 1980~1990년대 주로 사용되던 전통적 규제조치 외에 특허소송이 새로운 견제수단으로 많이 활용된다는 점이다. 미국 무역위원회(ITC)에 제소되는 건수가 급증하는 가운데 2009년 한국 기업을 상대로 제소된 10건이 모두 특허 관련 내용이었다. 우리는 언론에서 LG전자ㆍ월풀 간 냉장고 소송이나 삼성전자ㆍ샤프 간 액정표시장치(LCD) 소송 등을 자주 접하곤 한다. 특허소송은 연구개발(R&D)과 생산투자가 모두 끝나고 제품을 판매하는 시점에 발생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소송에서 패하면 소송 비용은 물론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하고 심지어 제품생산을 중단해야 한다. 최근에는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성과를 올리면서 한국 기업을 상대로 무차별적 소송을 거는 '특허괴물(patent troll)'이 등장해 기업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실질적 생산활동 없이 특허권이 무기인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특허관리가 소홀한 한국 기업은 좋은 먹잇감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현재 수출을 하고 있거나 준비 중인 기업이라면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고 대비해야 한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조건 해외시장에 진출했다가는 뜻하지 않은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렵게 미국시장에 상륙해 한때 판매량 3위까지 올랐던 한 컴퓨터 기업은 미국에 등록된 특허가 하나도 없는 것을 알아차린 경쟁사가 소송을 제기하자 눈물을 머금고 철수해야 했다. 반대로 특허로 무장한 기업은 해외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 특히 자신이 보유한 특허가 국제 기술표준으로 채택되기만 하면 막대한 로열티 수입으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 퀄컴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표준과 LG전자의 디지털 TV전송 표준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역협회가 특허청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국내 수출기업의 지식재산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협력하기로 한 것은 의미가 매우 크다. 우선 두 기관은 국내 수출 중소기업이 가진 유망 기술을 해외에서 권리화할 수 있도록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수출기업 특허교육 실시 ▦특허출원ㆍ분쟁 상담 및 설명회 개최 ▦특허권 인식제고를 위한 홍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할 계획이다. 기술권리화에 더욱 관심 가져야 우리는 '전화기' 하면 미국의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을 먼저 떠올리지만 전화기의 진짜 발명가가 누구인지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2002년 6월에 통과된 미 하원 결의안에서조차 19세기 이탈리아계 미국인 발명가 안토니오 무치의 업적을 기리면서 "그에게 10달러의 신청비용만 있었다면 벨에게 특허권이 부여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언급됐을 정도다. 이후에도 벨은 아이디어 도용설, 심사관 매수설 등 온갖 구설에 휘말렸지만 가장 먼저 특허권을 등록한 덕택에 오늘날 전화기 발명가이자 세계적인 유ㆍ무선 통신기업 AT&T의 설립자로 기억되고 있다. 지식재산 전쟁시대를 맞아 우리 기업들도 '제2의 안토니오 무치'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기술을 권리화하는 방법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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