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는 빗방울을 오롯이 두 손으로만 느껴본 적이 있는가. 아름드리 나무를 오롯이 두 팔로 껴안으며 그 냄새와 촉각에 빠져본 적 있는가.
여기 오롯이 두 손으로 세상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아주 어렸을 적 심한 열병으로 시각과 청각을 잃어버린 영찬 씨. 그러나 그에겐 보고 듣는 게 전부는 아니다. 하늘에 있는 누군가가 유일하게 허락한 두 손으로 그는 세상을 느낀다. 영찬 씨는 말한다.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해 잠시 귀를 닫고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해 침묵 속에서 기다린다"고….
달팽이처럼 촉각에만 의지해 느린 걸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영찬 씨, 그의 곁에는 천사 같은 아내 순호씨도 있다. 척추장애로 성인 남성의 허리춤에 겨우 닿는 키를 가졌지만 늘 영찬 씨 곁에서 함께 발을 맞춰준다. 순호씨는 점화(點話·화자의 손가락으로 청자의 손가락 위에 점자를 쳐 대화하는 방식)로 식탁 위 반찬의 내용과 위치를 살갑게 알려주는 등 사랑하는 이의 눈과 귀가 기꺼이 되어준다.
지난해 11월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다큐영화 '달팽이의 별'은 불편한 몸을 지녔지만 뭇 사람들보다 세상의 숨겨진 가치를 오롯이 느끼고 발견해 나가는 부부의 소소한 일상을 그려냈다. 영화는 보고 듣지 못한다고, 남들과 다른 왜소한 몸을 지녔다고 이들에게 '연민(憐憫)'의 마음을 가지라 말하지 않는다.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여행을 떠나는 일상의 일들에서 소중한 의미를 발견해 나가는 영찬 씨와 순호 씨, 그들의 걸음걸음을 지켜보면서 외려 삶의 아픔을 치유 받는다. 불편한 몸, 남들보다 부족한 처지를 탓하기보다 소소한 일상의 순간에 감사하고 즐기는 부부의 순도 100% 사랑을 지켜보며 잊고 있던 소중한 가치를 다시금 일깨운다.
'달팽이의 별'은 한국 영화 최초의 '배리어프리 영화'(Barrier-Free·한국어자막과 음성해설을 넣어 시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영화)로 아직 개봉관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따뜻한 봄 기운을 안고 22일 관객을 찾아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