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ㆍ11 테러가 발생한 지 벌써 6년이 흘렀다. 아직 미국인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고 할리우드에도 아직 잔해가 남았다. 폭탄 테러 만큼 스크린에 옮기기 좋은 소재란 별로 없지 않을까. 블록버스터 '히트'와 '콜래트럴'을 연출한 할리우드 흥행사 마이클 만 감독 역시 9ㆍ11 악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 평온한 오후 미국인들이 밀집한 주택가에서 300여명이 살해되는 폭탄테러가 발생한다. 이 사건으로 절친한 동료를 잃은 FBI요원 플러리(제이미 폭스)는 폭탄ㆍ법의학 등 최정예 전문 요원 4명과 범인을 잡기 위해 폭파 현장으로 떠난다. 하지만 그들에게 수사가 허락된 시간은 단 5일. 사우디 정부는 수사에 협조하길 거부하며 출국을 종용한다. 설상가상으로 요원 중 한명인 레빗(제이슨 베이트먼)이 테러범들에게 납치 당하며 상황은 더욱 꼬여 간다. 내달 1일 개봉하는 '킹덤(The Kingdom)'은 마이클 만 감독이 제작ㆍ기획을 맡고 배우 겸 감독인 피터 버그가 메가폰을 잡은 화제작. 액션 장르와 다큐멘터리 기법이라는 씨줄과 날줄로 엮어 만든 이 작품은 미국에 대한 애국주의로 피범벅된 여느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르다. '람보식' 호쾌한 액션으로 악당을 물리치는 볼거리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실망스러울 지도 모를 일. 영화는 시종일관 '방관자적 시선'으로 폭탄테러 현장을 담아낸다. 특히 오프닝 장면은 아랍 국가의 왕족과 미국 정유 회사와의 밀월 관계를 타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채웠다. '킹덤'은 오히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테러와의 전쟁'을 비판하는 반미영화에 가깝다는 평이다. 어찌된 까닭일까. 할리우드 주류 상업영화가 반미 깃발을 높이든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해답은 영화 안에 있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가 다 없애버리면 돼." 이슬람 원리주의자 리더가 FBI 요원의 총에 맞고 숨을 거둘 때 어린 손녀에게 남긴 말이다.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가 있을까. 이슬람 리더의 유언은 주인공 플러리가 폭탄 테러로 절친한 동료를 잃은 뒤 FBI 법의학 전문 요원에게 속삭인 위로의 말과 같다. "걱정마. 우리가 다 쓸어버리면 돼…." 결국 모두 가해자이고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현실.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반미보다 반전(反戰)이 아닐는지. 또 다른 관전 포인트. 영화 '레이'로 아카데미 등 유명 영화제에서 주연상을 수상한 제이미 폭스의 절제된 연기가 눈여겨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