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미친 척하기와 법치주의


윤 하사는 훈련소의 여느 내무반장과는 달랐다. 그의 표정 변화 하나에도 소대원들이 전전긍긍하고 그가 한번 화를 내면 마치 광신도가 교주를 대하듯 소대원들이 울부짖으며 바지 가랑이를 잡고 벌벌 떨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소대원들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는지 요령을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애들은 칭찬해줄 만한 일에 칭찬해주고 화낼 만한 일에 화를 내면 절대 내무반장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칭찬을 들을 줄 알았는데 화를 내고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뜻밖에 칭찬을 듣게 해야, 한마디로 미친 척해야 비로소 내무반장을 무서워한다."이수태가 쓴 '어른 되기의 어려움'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법치주의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데 이 이야기만큼 적절한 예는 없을 듯하다. 권력을 쥔 이가 일관성을 보이면 아무도 그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들쑥날쑥하고 널뛰듯 미친 인간 행세를 해야 무서워하는 것이다. 법치주의는 바로 그 대척점에 있는 입장을 말한다. 법대로 해야 한다는 인식과 법대로 하면 탈이 없다는 인식 속에는 권력 남용과 일탈에 대한 강한 반성과 저항력의 기제가 깔려 있다.


반대로 법대로 해서는 다스리기 어렵다는 인식과 법대로 해봤자 손해만 본다는 인식이 보편화될 때 사회는 다른 길을 찾기 시작한다. 주먹이 센 사람은 폭력으로 해결될 상대를 고르고 돈을 쥔 사람은 부패라는 방편을 찾는다. 눈치 빠른 사람은 아부라는 재주를 부리고 목소리밖에 없는 사람은 떼법 행사에 나선다. 부패나 폭력을 벌한다고 해서 아부는 나쁘다고 가르친다고 해서 떼법을 용납하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는다고 해서 이런 일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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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권력자가 법대로 해야 하고 이것을 본 피치자가 이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믿음 없이는 사회가 가야 할 올바른 방향에 대한 동력을 찾을 수 없다. 전국시대의 진 나라 공손앙이 나무 한 그루를 옮긴 백성에게 포고문에 약속한 대로 십금을 줬다는 사기 상군열전의 보고는 그런 믿음이 고대사회에서도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알려주는 일화이다.

자기가 만든 법에 걸려 죽은 그의 최후를 법치주의에 대한 조롱으로 인용하는 무식한 짓거리에 동의하지 말 일이다. 공손앙의 불행은 법을 권력자에 대한 견제적 장치로 보지 않고 단순히 피치자를 다루는 전략적 방책으로 인식한 데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바다 건너 서양의 법치주의는 보통 '법의 지배'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이것은 권력 남용에 대한 견제를 말하는 것이다. 법질서를 잡겠다고 호령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때려잡는 데 쓰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1조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말이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 뜻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게 법치주의다. 이 단순하고 절절한 언명에 코웃음 치며 미친 척하는 '윤 하사'들은 어느 날 공손앙의 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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