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파이낸셜 포커스] 공전하는 정책금융기관 재편

의견 수렴에만 한달 너도나도 "통합 싫다"<br>산업은행-정책금융공사 재무악화 우려 반대 표명<br>선박금융공사 설립도 표류 7월초 청사진 마련 희박


"각 정책금융기관 입장을 듣는 데만 꼬박 한 달이 걸렸습니다. 이런 속도로 제대로 된 개편안이 나올지 의문입니다."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태스크포스(TF)'에 참여 중인 한 인사가 던진 말이다. 관련 기관들의 입장이 워낙 첨예하게 엇갈리다 보니 의견 수렴에만 전체 일정의 3분의1을 썼다. 정책금융기관 재편과 밀접하게 연관된 선박금융공사 설립 문제도 TF 내에서 부정적인 기류가 형성되고 있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다.


30일 금융 당국과 금융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출범해 정책금융 재편 문제를 논의 중인 TF가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TF는 다음달 말 늦어도 7월 초까지 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현 상황만 놓고 볼 때 제대로 된 정책금융의 새판 짜기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공전의 가장 큰 이유는 관련 기관의 입장 차가 워낙 크기 때문. 정부는 중복 기능을 줄이고 민간 영역과 마찰을 방지한다는 대원칙 아래 재편을 추진 중이지만 현 체제 유지를 강력하게 희망하는 기관들의 논리에 막혀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의 재통합 문제가 대표적이다. 산은과 정금 간 재통합은 양 기관 모두 반대하고 있다. 최근 양 기관은 TF에 현행 체제 유지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기사



산은은 정금과 재통합하면 재무구조가 악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산은은 2009년 정금을 분리하면서 15조원에 달하는 무수익 자산(산업금융채권)을 정금 측에 넘겼는데 재통합하면 이를 다시 가져와야 해 재무구조가 나빠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산은은 TF에 공사와 재통합 필요 조건으로 증자를 통한 정부의 재원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지원이 힘든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재통합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정금 역시 산은과 재통합할 경우 부채는 늘고 자본금은 줄어드는 실익 없는 합병이 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특히 한 해 20조원에 달하는 중소기업 지원 등 자금 공급 능력이 절반으로 줄어 중소기업을 강조하는 새 정부의 국정 기조에도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수출입은행이 추진 중인 대외금융 통합 움직임에 대해선 다른 정책금융기관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수은은 대외금융 전담 조직으로 규모를 키울 계획이다. 현재 8조원인 법정자본금을 15조원으로 늘리고 간판을 '한국국제협력은행'으로 바꾸는 수은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하지만 다른 기관들은 수은이 대외금융을 독점하면 외화 자금 조달 시장에서 다른 국내 기관들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선박금융공사 설립 문제는 TF 내에서 부정적 기류가 형성되고 있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선박금융공사는 수은ㆍ산은과 업무가 중복될 수 있기 때문에 방향이 빨리 정해져야 하지만 논의만 무성하다. TF의 한 관계자는 "지난 29일 회의에서 해수부가 해운 쪽에 정책금융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근거가 부족했다"며 "공사 설립이 자칫 특정 산업에 보조금 지급을 금지하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할 소지가 있는데 이에 대한 명확한 답변이 없었다"고 말했다.

TF는 그동안 관련 기관의 의견 수렴을 끝내고 다음주부터 정책금융 개편과 관련한 본격적인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한 달 넘게 공전을 거듭한 탓에 TF가 당초 예정했던 7월 초까지 개편안의 밑그림을 내놓을 가능성은 희박해진 상황이다. 이 때문에 7월 말이나 8월 초로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서민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