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월10일] <1291> 버펄로빌

윌리엄 코디. ‘버펄로 빌’이라는 별명의 서부개척자이자 극단주다. 코디를 모델로 삼은 서부영화만도 수백편이 넘는다. 자신도 서부극의 원조다. 영화가 없던 시절 2,000명이 넘는 배우를 동원해 인디언과 개척민들의 갈등과 전쟁을 대형극으로 공연하는 ‘와일드 웨스트(Wild West)’라는 극단을 운영했으니까. 영화 속의 주인공답게 코디는 수많은 직업을 거쳤다. 부친의 사망으로 가세가 기운 12세 때(1857년)부터 역마차 짐꾼을 시작으로 들소 사냥과 소몰이, 사금(沙金) 채취, 군 정찰병에서 호텔 지배인까지 지냈다. 인생은 바꾼 것은 연예사업 진출. ‘인디언 전쟁과 카우보이, 서부개척’의 추억이 돈벌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대형 극단을 꾸렸다. 연극에 사람뿐 아니라 인디언 추장, 소와 말, 코끼리까지 출연시킨 그는 얼마 뒤 돈방석에 앉았다. 미국과 유럽 순회공연을 통해 대통령과 왕족ㆍ교황까지 알현하는 흥행업자로 성장한 그가 1917년 1월10일 71세를 일기로 사망할 무렵에는 이탈리아에서도 ‘웨스틴 마카로니’류의 영화를 만들어낼 만큼 서부극이 전세계로 퍼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흥행업자보다는 도살자로 기억된다. 버펄로 빌이라는 별명도 18개월 동안 야생 들소 4,280마리를 쏘아 죽여 얻은 것이다. 코디 같은 도살자들의 들소 사냥으로 4,000만 마리가 넘던 미국의 들소가 멸종단계에 들어갔다. 식량원이자 의복과 천막의 재료를 제공하는 들소의 개체 수 감소와 멸종위기는 인디언 인구의 감소와 위축으로 이어졌다. 버펄로 빌은 요즘도 미국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명과 박물관 도시, 노래 가사와 뮤직그룹에서 미식축구팀에 이르기까지 버펄로 빌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학살의 기억’이 미국 곳곳에 깔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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