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미술관 ‘한국드로잉 30년:1970~2000’, 11월21일까지
|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그리스의 수주를 받아 만든 현대중공업의 1974년작 '아틀란틱 바론'의 설계도면. 한국의 근대화를 그려낸 하나의 드로잉으로서 전시장에 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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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기의 1993년작 드로잉 '아토마우스'. 오늘의 아토마우스가 완성되기 이전의 단계를 엿보는 재미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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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국 드로잉 백년전:1870~1970’전을 열었던 방이동 소마미술관이 2부 전시격인 ‘한국드로잉 30년:1970~2000’전을 16일 개막했다. 국내 작가 70여명의 작품 300여점으로 꾸며지는 대규모 드로잉 전시다.
흔히 드로잉을 입시학원에서 가르치는 데생과 혼동하는데, 드로잉이란 작가가 작품을 구상할 때 맨먼저 나오는 ‘날 것’으로 생각의 변화와 작업과정을 모두 드러내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드로잉은 밑그림이나 스케치가 아닌, 작가의 생각과 의도가 어떻게 변모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작품을 모아놓고 보니 전위적이면서도 고상한 한국 현대미술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연대기순으로 6개로 나뉜다. 시작은 1970년대 실험미술 세대의 드로잉. ‘물방울 화가’ 김창렬의 초기 드로잉은 지금의 맑고 동그란 물방울이 완성되기 이전 단계를 보여준다. 백남준의 ‘실험 TV’는 파장을 드로잉하는 작품으로, 관객이 마이크 앞에서 소리를 내면 브라운관 화면 속 파장이 그림처럼 변한다. 2전시실은 추상 드로잉이다. 이강소의 드로잉은 군더더기 없는 그의 회화를 쏙 빼닮았고 쇠사슬을 캔버스에 묶은 하종현의 ‘접합’은 억압의 느낌을 보여준다.
3전시실은 사회상을 반영하는 작품들로 조정래의 대하소설 ‘한강’의 삽화로 그려진 드로잉에서 당시 생활상이 고스란히 엿보인다. 제주 4ㆍ3 항쟁을 소재로 한 강요배의 1989년작 드로잉이나 오윤, 이철수 등의 작품도 시대상을 담고 있다. 눈길을 끄는 ‘작품’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그리스에서 수주해 우리 손으로 만든 첫 유조선인 ‘아틀란틱 바론’호의 설계도다. 전시 기획자는 현대중공업에서 빌려온 미공개 설계도를 한국 현대사의 ‘선박 드로잉’으로 자신 있게 전시장에 걸었다. 양 교수는 “백지에서 끄집어낸 열정과 능력은 한국 근대화의 순간을 보여주는 드로잉으로 의미를 둘 만하다”고 소개했다.
강익중, 박이소, 안규철 등의 아이디어가 펼쳐지는 4전시실의 생각하는 드로잉과 시대적 자화상으로 자신을 그렸던 서용선ㆍ오원배ㆍ황주리ㆍ김호득 등 5전시실의 자화상 드로잉 등은 익숙한 작가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한다. 2005년 15량의 열차를 흰 천으로 덮어 미국을 동서로 횡단했던 전수천의 ‘무빙 드로잉 프로젝트’ 사진은 열차 움직임에 따라 자연에 흰 선을 만드는 ‘움직이는 드로잉’의 신개념을 이뤄냈다. 관람객 자신의 삶의 드로잉을 떠올려본다면 전시는 한층 더 흥미롭다. 11월21일까지. 성인 입장료 3,000원. (02)425-1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