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지표들만 본다면 여전히 우리 경제는 완만한 회복 국면에 있다. 다만 실물 분야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에 따른 충격의 징후가 감지돼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정부가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긴급민생대책회의에서 '경기보완 방안'을 발표한 후 기획재정부 간부가 전한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우리 경제 여건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지만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고려해 예방 차원에서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는 뜻이다. 이는 현재의 국면을 일시적으로 경제여건이 고르지 못한 '소프트패치' 상황으로 인식한 데 따른 반응으로 보인다. 소프트패치 상황에서 정책 대응을 적기에 제대로 하지 못하면 경기의 향방은 크게 꼬일 수 있다. 그렇게 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지만 최악의 경우 경기가 회복하다 침체 국면으로 다시 진입하는 더블딥(이중침체) 가능성까지 전혀 배제하지 못한다. 그만큼 세월호 트라우마가 생각 이상으로 클 수 있다는 의미다.
관건은 정책 대응의 범위와 지속성, 강도에 있다. 보완 수준인 이번 처방이 단순히 세월호 쇼크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땜질 처방으로 끝난다면 조삼모사에 그칠 수 있다. 하반기의 성장 여력을 2ㆍ4분기로 미리 끌어 써서 상반기의 성장부진을 희석시키는 임기응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의 상황이 그랬다. 그해 정부는 한해 쓰기로 했던 재정집행 총액의 60.9%를 상반기에 쏟아부어 2% 초반마저 위협 받던 1~6월 경제성장률을 2.5%(전년 동기 대비 기준) 수준으로 지켜냈다. 그러나 그만큼 하반기의 재정지출 여력이 줄어들면서 7~12월 성장률이 2.1%로 주저앉고 말았다. 이는 재정 조기 집행이라는 정책카드가 경기 하방압력을 근본적으로 반전시키는 데에는 역부족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번 응급조치의 약효를 지속적으로 하반기로 연장시키기 위한 거시ㆍ미시정책의 연계가 후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하고 있다. 소비와 투자심리를 살리기 위한 정책조합(폴리시믹스ㆍpolicy mix)의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 경제연구실장은 폴리시믹스의 재조정 방향에 대해 "경제주체들의 세금 및 이자 부담을 덜어주고 환율 급등락에 따른 손실 위험을 막아주며 민간의 투자·소비를 끌어내기 위한 예산지원과 규제개선이 복합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진단했다.
안타깝게도 국내 경제정책 기조는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세 부담을 덜어줘도 투자·소비를 망설일 판에 정부와 국회는 사실상 증세를 추진해왔다. 내수가 부진하면 수출을 통해서라도 경제성장을 견인해야 하지만 정부는 급격한 환율하락을 용인해왔다. 부동산 경기를 살리겠다던 정부는 기재부가 부동산 경기 정상화를 위해 경제혁신3개년계획에 담으려 했던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완화를 박근혜 대통령의 최종 발표담화에서 누락시켰다. 기업의 투자규제완화정책은 국회·지방자치단체 등의 문턱에 걸려 표류하고 있다.
대외여건도 녹록하지 않다. 기재부는 '최근 경제 동향(일명 그린북)' 5월호를 통해 세계 경제의 하방 위험이 여전한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중국 등 신흥국의 경기둔화, 일본의 소비세 인상에 따른 경기위축 등이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따라서 정부가 단순히 '세월호 쇼크'만을 의식한 2ㆍ4분기 응급조치로 경기보완을 마칠 것이 아니라 하반기를 겨냥한 후속 대책 준비에도 속도를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필요하다면 현 정부 임기 내 재정적자를 면해보겠다는 '균형재정 달성' 정책이나 박 대통령의 복지공약·지방공약 등을 과감히 연기하거나 포기할 필요도 있다. 따지고 보면 정부가 경기악화의 우려 속에서도 세금을 더 걷고 지출증가를 억제하는 역주행을 하는 것은 지나친 '공약이행 도그마'의 틀에 갇혀 재정운영과 거시정책의 유연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