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칭기즈칸의 고뇌

KBS TV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칭기즈칸의 덕목을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아내 버얼태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든다. 칭기즈칸이 어릴 적에 약혼해 9년 동안 사모하던 여인 버얼테는 신혼의 단꿈이 사라지기도 전에 메르키트족에 납치당한다. 칭기즈칸은 의형제 차무하와 함께 메르키트족을 공격해 8개월 만에 그의 아내를 되찾는다. 그러나 그때부터 칭기즈칸은 고뇌에 빠지게 된다. 그의 아내 버얼테가 임신을 한 것이다. 칭기즈칸은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인지 아닌지를 깊이 의심한다. 그러나 칭기즈칸은 고뇌하는 중에도 아내가 낳은 아들 주치에 대해 “주치는 나의 아들이다. 다시 이를 거론하는 자는 내 아들도 신하도 아니다”라고 명확하게 정리한다. 민영화 공기업들 외국인 손에 전문경영인에게는 가장 힘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실적평가에 따라 내년에도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혹은 짐을 싸야 하는지 결정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전의 대기업 전문경영인의 경우 대주주, 혹은 오너와 관계가 좋으면 자리에 대한 걱정은 덜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배당금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외국인 주주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전문경영인의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졌다. 공기업의 전문경영인의 경우는 대기업의 경우보다 스트레스가 더하다고 한다. 연말이면 주가ㆍ순이익ㆍ생산성 등의 실적평가가 이뤄지고 정부정책을 잘 따랐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교체 대상이 된다. 그러나 공기업의 전문경영인은 정부정책을 따를 경우 기업 실적이 낮아지고 높은 실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정책만을 따를 수는 없다는 고민이 있다. 특히 전직 공기업 전문경영인의 “정부 소유기관이지만 책임경영을 보장한다던 정부의 간섭이 지나치다. 공기업 전문경영인의 하루 일과는 직원ㆍ노조 등 내부 이해관계자와 정부를 비롯한 외부 이해관계자와의 협상의 연속이었다. 공기업 전문경영인은 협상가라 할 수 있다”는 말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요구는 물론 기업 실적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공기업 전문경영인의 고충을 알 수 있다.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의 전문경영인은 대기업ㆍ공기업의 경우보다 더 어려운 입장이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국가신인도 회복을 목적으로 공기업의 민영화를 적극 추진했다. 당초 이들 기업의 주식은 국민주의 형태로 국민에게 배정됐지만 민영화 이후 대부분의 주식이 외국인의 손에 넘어갔다. 대표적인 민영화 기업만 봐도 국민은행 86%, 포스코 64%, KT&G 62%, KT 47%의 주식을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다. 우리가 애정을 갖고 있는 이들 기업을 흔히 심리적 국민기업이라고 표현하지만 그 실상은 외국인 소유의 기업인 것이다. 민영화된 이 기업들에 대해 정부가 보유한 주식이 단 한주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기업과 동일한 공공적 역할을 요구하고 이 기업들의 전문경영인에 대해 공공성에 초점을 둔 엄격한 평가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그 결과 민영화된 이들 기업은 정부 등 이해관계자의 요구와 시장의 원리에 따라 높은 투자수익을 얻으려는 외국인 주주들의 이해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민영화된 기업의 공공적 역할과 외국인 주주들의 요구 가운데 갈등이 가장 심하게 일어나는 시점이 12월, 즉 올해 실적을 감안해 배당액을 내부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지금, 이 계절이다. 외국인 주주들은 경영 환경이 좋은 해에는 높은 실적을 들어 자본차익 획득을 위한 자사주 매입과 고배당을 요구하는 한편, 경영 환경 악화로 실적이 낮은 해에는 주가 상승률이 낮았음을 들어 더욱 높은 배당을 요구한다. 만약 이들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주총 거부 및 경영진 퇴진 압력까지 행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외환위기 이후 주가 하락의 위험을 부담하면서도 민영화된 기업들의 주식을 매입한 외국인 주주들의 고배당 및 자사주 매입 요구를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 이들의 요구는 정당하고 압력 또한 가시적이다. 그러나 민영화된 기업들이 외국인 주주들을 설득해 적정 수준의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실시하면 정부와 시민단체가 강한 불만을 쏟아낸다. 국부의 해외 유출이 심각하다든가, 외국인들이 4년간 4대 기업에서만 35조원, 배당만으로 2조8,000억원을 거둬갔다는 등의 불만들이다. 국부유출 탓보다 기업 지켜야 사실 외국인 주주가 배당으로 많은 금액을 거둬가는 것에 대해 민영화된 기업의 전문경영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이들 기업 역시 땀 흘려 일한 과실이 우리 국민, 우리 땅에 남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가 자신이 경영하는 기업의 주식을 외국인에게 넘기는 것을 안타깝게 쳐다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칭기즈칸에게 지혜로운 어머니 커어룬은 “버얼테는 납치를 당해 고통을 당하면서도 네 곁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랐어. 버얼테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니? 싸움과 복수는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잘 지켜주지 못하고 수모와 고통을 당하게 했으니 사과해야 할 사람은 너야”라고 말했다. 우리가 애정을 갖고 있는 심리적 국민기업, 실질적으로는 외국인 기업인 민영화된 공기업의 과실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탓하기보다 이들 기업을 지키기 위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할 계절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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