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경기] [벼랑위에 선 나라살림] <3> 감세, 성장 자양분인가 재정위기 주범인가

투자·소비 못살리면 오히려 성장잠재력 떨어뜨릴수도<br>감세규모 향후 5년간 96兆달해… 세금인상도 어려워 재정 빨간불<br>"일본式 잃어버린 10년 전철 우려"… 세원확충등 대책마련 발등의 불


지난 7월2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민관합동회의. 대기업들의 투자를 촉구하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 예고된 탓에 참석한 재계 총수들은 긴장했다. '일자리 창출과 경기회복을 위해 투자가 필요한 때입니다'라는 대형 플래카드 바로 아래에 자리잡은 이 대통령이 마이크를 잡았다. "역사에 없는 재정지출을 과감하고 빨리 실행했기 때문에 그나마 자리를 지킬 수 있었지만 (과도한 재정지출로)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한 이 대통령은 "미래에 대한 투자는 기업의 사회에 대한 의무이자 책임"이라며 기업 투자를 촉구했다. 세금을 줄여주고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느라 나라살림이 어려워져 걱정이 많은데 대기업들은 무엇을 하느냐는 질타였다. 출범 초기 이명박 정부의 트레이드마크는 '7ㆍ4ㆍ7'과 감세정책이었다. 과도한 세금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고 해외 투자가도 한국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에 세금을 줄여줘 기업들의 투자와 고소득층 소비를 늘려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래서 정부는 지난해 정부 출범과 동시에 소득세ㆍ법인세율 인하와 종합부동산세 개편 등을 실시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기대와 반대로 흘러갔다. 감세로 세수는 줄었는데 위기극복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로 나라살림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반면 위기에 한껏 몸을 움츠린 기업들은 투자에 나서지 않고 고소득층 역시 아직은 본격적으로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ㆍ사회개발연구부장은 "감세는 투자 활성화로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지만 재정적자가 커지면 오히려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감세정책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감세규모 5년간 96조원"=이명박 정부가 출범 이후 지난 정권과 가장 차별화를 내세웠던 부문이 바로 세금정책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세법 개정으로 과표 2억원 초과 기업의 법인세율을 25%에서 올해 22%, 내년 20%로 내리고 8~35%인 소득세율도 순차적으로 6~33%로 낮췄다. 이 같은 감세정책은 곧바로 세수감소로 이어졌다. 국세청에 따르면 올 5월 말까지 세수 누계는 70조7,544억원으로 전년 동기(81조3,145억원)보다 13% 줄었다. 법인세가 23.5%, 소득세가 15.1% 각각 줄어 올해 세수 감소분의 76.8%를 차지했다. 문제는 내년 이후다. 2월, 국회 예산정책처는 정부의 감세규모가 향후 5년간 96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충격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정부가 감세정책을 내놓은 2008년을 기준연도로 대비하지 않고 전년 대비 방식을 적용해 이른바 '눈 가리고 아웅'격이라는 지적이었다. 올해에만 소득ㆍ법인세 인하로 11조6,000억원의 세수가 줄어들고 ▦2010년 13조2,000억원 ▦2011년 3조9,000억원씩 각각 감소한다는 게 예산정책처의 주장이다. 박형수 조세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은 "내년이 되면 2단계 감세조치 때문에 세수가 더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며 "현실적인 재정건전화 대책을 세워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정부, '이러지도 저러지도…'=감세로 재정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에 나섰다. 기업의 강한 반발에도 임시투자세액공제를 과감히 없애고 연소득 1억원 이상 고소득 직장인에 대한 근로소득세액공제(50만원)를 폐지한 것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올 세제개편안으로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감세에 따른 내년 세수 감소분은 13조2,000억원이지만 올해 세수 확보분과 성장률 증가에 따라 늘어나는 세수를 합해도 총 8조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366조원에 달하는 국가채무를 줄이기는커녕 감세에 따른 세수 감소분을 메우기에도 빠듯하다. 그렇다고 섣불리 세금을 올리기도 어렵다. 특히 법인세의 경우 경쟁국들과 비교해야 하고 기업들이 법인세 인하를 전제로 사업계획을 세운 마당에 세금인하를 미룰 경우 정부 신뢰도 상실이라는 문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는 "세율인하를 유보해도 그 세수 효과는 2011년부터 나타나게 된다"며 "감세유보나 증세보다는 낭비ㆍ중복투자를 줄여 지출의 실효성을 극대화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1990년대 감세와 토목공사 등 재정확대책을 동시에 쓰다가 경기회복 기미가 나타나자 증세로 돌아서 '잃어버린 10년'으로 간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극단적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갑작스런 증세 탓인지 무리한 경기부양 탓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지만 현 우리나라의 재정상황이 당시 일본과 닮은꼴인 것은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재정지출의 급속한 증가나 급격한 감세조치에 따른 세수위축 모두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유사하다"며 "재정운용의 효율성과 세원확충에 대한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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