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천수답

오철수(증권부 차장) csoh@sed.co.kr

시골을 여행하다 보면 산자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천수답을 보게 된다. 천수답은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 한 톨의 쌀이라도 더 생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물을 댈 수 있는 시설이 돼 있지 않아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당연히 생산성은 형편없이 낮다. 요즘 증권산업을 보면서 천수답을 연상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지금 우리 증권업계는 안팎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안으로는 금융업종간 진입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은행들의 증권업 진출이 잇따르고 있고 밖으로는 선진 금융기법으로 무장한 외국계 자산운용사들의 국내시장 잠식이 가속화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증권사들은 취약한 수익구조에 의지한 채 그저 주식시장이 좋아지기만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44개 국내 증권사들이 올린 영업수익 10조9,070억원 가운데 고객들이 주식매매를 하면서 낸 위탁매매 수수료 비중은 29.7%(3조2,369억원)에 달한다. 여기에다 증권사들이 자기 돈으로 주식ㆍ파생금융상품 등을 매매해서 얻은 수익이 40.9%를 차지한다. 이들 수익은 주가 등락에 따라 부침이 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증권사 수입의 70% 이상을 불안정한 시장상황에 맡겨두고 있는 셈이다. 최근 들어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자산관리ㆍ기업금융 부문의 비중은 각각 0.1%, 1.9%에 불과해 이 시장은 고스란히 외국계 회사와 은행에 넘겨주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증권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미국은 어떤가. 미국 증권업계는 지난 80년대 정부의 수수료 자율화 조치 이후 위탁매매 수수료 비중이 급격하게 줄어들자 기업금융과 자산운용이라는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냈다. 이 두 부문의 수수료 수입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미국 증권사들이 투자은행업을 핵심기능으로 발전시킨 데는 활발한 인수합병(M&A)를 통해 자본규모가 커진 것도 한몫했다. 이제 외국계 자산운용업체들은 선진화된 금융기법과 거대 자본을 무기로 1,000조원에 달하는 국내 개인금융자산시장을 노리고 속속 몰려들고 있다. 이런 와중에 국내 은행들도 그동안 구조조정을 통해 커진 덩치를 바탕으로 증권업 영역에 진출하고 있다. 문제는 증권업계가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위탁매매 수수료로 겨우 유지하다가 몇 년에 한번 주가가 급등하면 그것으로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업무영역이 비슷하다 보니 M&A를 통한 경쟁력 강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증권업계는 이제라도 우리 증권산업의 생존이라는 절박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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