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찾은 지친 영혼의 안식처
[새영화] 15일 개봉 '빈집'
그간 선보인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온전히 두 눈을 뜨고 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입천장에 낚시 바늘이 꿰이고(‘섬’) 날선 유리에 난도질 당하는가 하면 평범한 여자를 ‘창녀’로 만들어 버리는(‘나쁜 남자’) 극단적 이미지가 그의 영화를 지배해 왔기 때문이다.
올해 베니스영화제 수상작인 ‘빈 집’은 그러나 잔혹, 엽기와는 거리가 있다. 다루는 소재는 여전히 독특하지만 폭력은 순화됐고 등장 인물들 모두 행복한 결말을 맞으며 김기덕 영화의 ‘고정 관념’은 벗어 던져졌다.
태석(재희)은 빈 집을 골라 들어가 며칠씩 살고 나오는 특이한 인물. 도둑질을 하긴커녕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한다. 그러던 그가 으리으리한 빈 집에 들어간다. 그러나 빈 집이 아니었다. 그 곳엔 멍투성이가 된 채 유령처럼 넋이 나간 선화(이승연)가 있었다.
태석의 도움으로 선화는 매질하는 남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 둘은 이제 함께 빈 집을 찾아 다닌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지만 그들은 서로 사랑하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집주인에 의해 태석은 감옥에 간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이대로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 선화의 “사랑해요”라는 말을 빼면 둘은 대사 한 마디 나누지 않는다. 빈 집에서 지친 영혼의 안식처를 찾던 그들은 태석의 ‘유령 퍼포먼스’에서 정답을 찾는다.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내긴 충분하다.
감독은 해피 엔딩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다는 전작들의 메시지를 여전히 던지고 있다.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는 영화를 더욱 매끄럽게 만들었다. ‘위안부 누드 파동’의 주인공 이승연에게선 연기라기 보단 자신의 지금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느낌마저 든다. 15일 개봉.
이상훈 기자 flat@sed.co.kr
입력시간 : 2004-10-14 1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