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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16~17일 경기도 시흥시 대교HRD센터에는 '비서' 직무와 관련한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였다. 현업에서 잔뼈가 굵은 실제 비서부터 대기업 인재개발실의 간부, 교육현장에서 비서들을 키워내는 교수들까지. 이들이 1박2일 총 16시간에 걸쳐 토론한 것은 비서를 하는 데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가를 체계화하는 것. '그게 그렇게 많은 품을 들일 일인가' 갸우뚱거릴 만도 했지만 회의에 임하는 전문가들은 사뭇 진지했다.
토씨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가령 비서는 '문서를 OO하게 작성할 수 있다'의 빈칸에 들어갈 말이 신속이냐, 정확이냐, 능숙이냐를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 회의 의전 업무를 상위 능력에 넣어야 할지, 하위 능력으로 분류해야 할지를 갖고는 몇 시간을 토론했다. 현장의 전문가와 교육계 전문가 간 입장이 충돌해 미묘한 긴장이 감도는 순간도 있었다.
이날 토론의 결과는 밑그림에 불과했다. 이후에도 회의가 1~2주에 한번 꼴로 열렸고 정부 관계자가 포함된 심의위원회와 산업현장의 검증도 이어졌다. 현역으로 일하는 전문가가 많아 회의는 주로 주말에 열렸고 새벽까지 토론이 이어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5개월간의 산고 끝에 만들어진 결과물이 바로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이다.
NCS는 언뜻 보면 '특정 직무의 ABC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에 불과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 전반을 능력 중심으로 개혁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교육기관에서는 NCS에 따라 산업현장에서 바로 쓸 만한 인재를 키우는 실전적인 교육을 할 수 있다. 기업에서는 신입직원의 직장 내 교육훈련(OJT)과 기존 직원의 경력개발에 쓸 수 있고 직무급 임금제를 도입하고자 하는 사업장에서는 NCS를 기반으로 객관적인 직무평가체계를 만들 수 있다.
비서 NCS를 만드는 데 참여했던 한국능률협회의 이유나 교수는 "주말에 새벽 1~2시까지 작업하는 것은 기본이고 어떤 비서 분은 상사를 수행하다가도 NCS 회의 시간이라며 양해를 구하고 회의에 달려오기도 했다"면서도 "우리가 만든 표준이 후배들의 길라잡이가 된다는 사명감이 드니 전혀 고생스럽지 않았다"고 전했다.
비서 NCS는 수많은 NCS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정부는 총 833개 직무에 대해서 이 같은 NCS 개발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250종을 개발하는 데만 2만여명의 전문가가 투입됐다. 올해는 527종을 만드는 데 5만명 이상의 전문가들이 힘을 모을 예정이다.
NCS 개발을 주관하는 산업인력공단의 김진실 표준활용팀장은 "NCS 사업이 성과가 당장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교육·훈련·채용·인사 체계를 크게 바꾸리라는 확신 속에 개발작업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