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밥통’이라는 말은 별로 달갑지 않은 단어이다. ‘철’을 빼면 바보라는 의미의 밥통도 된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면 철밥통은 경쟁력이 없어서 오히려 스테인리스 밥통 또는 신소재 밥통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철밥통은 절대 다른 소재로 바뀌지 않는다. 다른 소재로 바뀌는 순간 그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퇴색돼 경쟁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분야는 진화해야 생존하는데 철밥통은 진화하는 순간 그 생명을 다한다. 그래서 이 녀석은 바뀔 수 없는 불변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아무튼 이 놈 하나만 있으면 된다. 이것이 철밥통의 경쟁력이다.
사회주의국가에서 만들어진 이 말이 왜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문제를 대변하는 용어로 자리잡고 있는지 애석하다. 우리 주변의 계층 간 갈등과 양극화도 잘 살펴보면 거기에는 철밥통이 주요 원인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부동산 문제도 그 근원은 사실상 돈이라는 철밥통이라 할 수 있다. 아예 법과 제도를 갖춰 합법의 탈을 쓰고 있는 지능형도 있다. 이 지능형의 특색은 문제점을 잘 밝혀내기가 어렵고 밝혀낸다 하더라도 그럴 듯한 명분을 대기 때문에 가슴만 답답하다는 것이다. 이 지능형은 아주 좋은 명분이 있으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더 지능화된 철밥통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기존 철밥통 체제의 규제를 깨야 한다는 규제개혁에 편승한 ‘기대기’ 명분을 갖춘 슈퍼지능형이다. 공정성과 경험 확보를 위해 만들어진 적격심사의 발주제도와 자격소지자가 가지고 있는 지위와 권한을 규제로 보고 이를 철폐해서 무자격자인 특정집단에게 이익을 보장해주는 엉뚱한 규제철폐 추진이 슈퍼지능형 철밥통 만들어주기의 대표 사례다. 과거 참여정부 당국자 몇몇은 이것이 함께하는 평등한 사회이며 이래야 국가경쟁력이 나온다는 어이없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문제는 이러한 문제들이 몰고 올 파장을 모르는 게 아니라 모르는 체 한다는 점이다.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는 많은 철밥통이 존재하고 뿌리 깊게 퍼져 있다. 세계와 경쟁해야 하는 21세기는 철밥통 경쟁력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각 분야별로 존재하는 철밥통을 퇴출하는 것만이 미래에 살아남을 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