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계의사설/12월5일] 국가의 역할

일년 전만 해도 영국의 정치인들은 금융계의 공격적인 투자와 부의 창출을 찬미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영국 경제가 길고도 깊은 침체에 빠져들면서 국민들이 금융회사들을 공공의 적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당과 보수당 모두 이 같은 여론을 감지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고심 중이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지난 3일(현지시간) 강력한 정부를 통해 경제를 살릴 것을 주문했다. 이에 대해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나는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보수당들이 방해하고 있다”고 암시하는 연설로 대답했다. 이는 영국 정부가 예금 지급보증이나 기업대출 활성화 등의 조치를 통해 시장에 개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피터 맨덜슨 영국 상무장관 식의 적극 개입 정책은 쉽게 시장에 안착하지 못할 것이다. 1990년대 영국을 지배했던 자유방임주의의 영향력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 경제가 경기침체 속에서 어떠한 위험에 빠져 있는지, 또 금융시장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인식하고 있다면 정부 개입을 찬성해야 마땅하다. 경제를 살리는 과정에서 정부의 책임이 더 무거워진다면 이는 환영할만한 사건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택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국 재무부는 오는 2011년부터 소득세 최고세율을 현행 40%에서 45%로 인상하기로 했다. 이 같은 세금인상은 보수파들의 반대를 불러올 수 있는데다 국민들조차 반감을 가질 수 있다. 그야말로 경제위기 국면에서 갈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사안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노동당이 ‘부자들로부터 얻어내는’ 전통적인 사회주의적 정책을 택함으로써 감수해야 할 리스크는 너무 크다. 정부 재정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데 비해 치러야 할 대가가 지나치게 비싸다. 합심해서 경제위기를 헤쳐나가기로 결정했다면 최대한 여론을 수렴해 불협화음의 리스크를 줄일 일이다. 보수당도 합리적인 경제회생 시나리오를 내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당수는 국가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에 대해 아직 명확한 비전을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열띤 논쟁이 벌어져야 한다. 이제는 나랏일의 범위를 분명히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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