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어느 소아과 병실 풍경


네 살짜리 막내가 얼마 전 입원을 했다. 밤에 애를 돌보는 일은 아빠의 몫이 됐다. 6인실. 다문화 가정 출신이 둘이다. 하나는 흔히 조선족으로 불리는 중국 동포 아이, 또 한 아이는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다.

조선족 부부는 별거 중이다. 엄마는 조만간 입주 아줌마로 어느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아이는 퇴원하면 친척집에 맡겨진다. 엄마는 아이가 안쓰럽고 아홉 살 난 아이는 젖먹이처럼 응석을 부린다.


필리핀 엄마를 따라 외할머니도 한국에 있다. 집에서 아이 4남매를 돌봤다. 아이의 독감이 아직 낫지 않았는데 아빠는 퇴원시켜달라고 한다. 외할머니는 필리핀에 되돌아가야 한다. 아빠가 배를 타게 되면 아이들 곁에 엄마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문화 가족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다. 어색했지만 일주일 가까이 지내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은 외모와 쓰는 말이 다를 뿐 나와 아이를 키우는 부모였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웃이었다.


병원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특히 아이들이 오는 소아과 병원은 사회상의 변화를 더 잘 보여준다. 한국 사회는 이미 모자이크 사회가 됐다. 한 병실의 3분의1이 다문화 가정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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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필리핀 이주 여성 이자스민씨를 두고 우리 사회가 시끄럽다.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를 의심케 하는 격한 표현도 여과 없이 쏟아졌다. 오원춘의 엽기적인 살인은 그렇지 않아도 차별과 멸시를 받던 중국동포의 설 자리를 위협하는 핑계거리가 되고 있다.

세계에 진출해 각 분야에서 위상을 떨치는 한민족을 보며 우리는 찬사를 보낸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박지성 선수, 김용 세계은행 총재 등의 이름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긍지가 느껴진다.

그런데 시선을 안쪽으로 돌리면 생각이 180도 바뀐다. 우리나라에 사는 동남아 출신 이주 노동자를 대할 때면 그렇게 속이 좁을 수가 없다. 같은 핏줄 중국동포도 같은 대상이다.

'세계 속의 한국인'을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5,000년 단일 민족'을 외치며 외국인들을 배척하는 것이다.

우리와 외모가 다른 이들에게 거부감을 갖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기자 역시 그렇다. 하지만 한 발짝만 다가서면 그들도 우리 이웃이요 친구가 될 수 있다. 마음을 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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