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벤처.중소기업 새천년을 연다] 벤처정책은 사상누각인가

정책진단-③벤처정책은 사상누각인가국내 벤처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인위적으로 육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나타나는 부작용들은 여기서 비롯된다. 인위적으로 육성된다는 것은 시장이나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다는 것을 정책입안자들이 인정하고 있다는 셈이 된다. 지원되는 「돈」의 규모가 정책의 의지유무와 직결되고 있다. 벤처기업 확인서만 받으면 각종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벤처자격증」따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양산되는 것이 사이비 벤처들. 수조원에 달하는 중소기업지원자금중 50%정도가 곁길로 샌다고 정책관계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금지원만이 능사아니다=『에베레스트 등반자에게 비행기를 제공하는 격입니다. 당장은 쉽게 등반을 시작하겠지만 자생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얼어죽기 십상이지요』 이른바 벤처붐이 일기 훨씬 이전부터 벤처형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A사 P사장의 비판이다. 그의 비판은 이어진다. 『돈 몇푼 안겨주는 것이 정부정책의 시작이자 끝이 되고 당장 자금력이 부족한 벤처업체로서는 기술개발보다는 자금확보를 위한 로비에 혈안이 되어있는 상태입니다. 이 와중에서 「정책자금」을 눈먼돈으로 여기는 사이비벤처들도 양산되고 있습니다』 P사장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정부정책자금은 절대 무상이 아닙니다. 싼 이자로 지원받아 다른용도로 사용하는 「무늬만 벤처」인 업체를 제외하고 정책자금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도 의문입니다. 절반이상의 기업은 자금지원을 받는 순간부터 빚더미의 수렁에 빠진다고 봐야 옳을 것입니다』 실제로 P사장은 현재의 업체를 설립하기 이전에 수억원의 정책자금을 끌어들였으나 사업에 실패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확보한 자금이 있다보니 기술개발외 꼭 필요하지 않은 부분의 지출이 급격히 늘어났다는것. P사장은 현재 일체의 정책자금은 물론 은행돈도 쓰지 않고 있다. 독이 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술평가 능력이 없다=『국내벤처기업은 대부분 자기업체 기술이 세계최고수준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기술수준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회사설립후부터 기초기술개발에 주력, 세계적인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한 B사 L사장의 지적이다. L사장은 자기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개발」을 했다고 열을 올리는 업체를 직접 찾아가 살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자금지원을 노리고 터무니없는 기술을 과대홍보한 사실을 곧바로 눈치채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국내 기술력이 세계수준에 뒤쳐진 상황에서 이를 제대로 평가할 전문가가 절대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라는게 L사장의 진단이다. 이러한 틈을 비집고 막대한 정책자금이 약간의 기술력으로 포장된 사이비벤처에 배정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음성적인 로비가 개입된다. 회사설립후 지금까지 500억원의 연구개발비를 쏟아부어 이제 세계최고수준의 기술력을 갖췄지만 그동안 L사장은 어쩔 수 없이 골프연습과 접대에 정열을 쏟아야 했다고 고백했다. 당장 회사의 기술력과 미래전망을 알리는데는 골프와 술접대가 더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자금지원을 담당하는 기관이 대폭적인 지원과 보수적인 운용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도 실상은 정확한 평가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봐야합니다』 또다른 폐단은 시간과 자금이 많이 소요되는 기초기술분야보다는 반짝아이디어제품의 개발에 치중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 이는 이러한 제품이 오히려 더 높은 평가를 받는 현실과도 연관이 있다. 그는 이러한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세계수준의 전문가집단으로 구성된 「평가단 풀제」를 운영하는 것도 한 대안이 될 수 있을것이라고 지적했다. ◇판로지원이 더 절실하다=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벤처기업 C사 K사장의 회고. 『몇년전 국가전산망을 구축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중소업체에서 개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행자부에서는 이를 외면하고 이와 유사한 자체프로그램을 개발, 어렵게 개발한 제품이 사장됐습니다』 틈만나면 「중소업체 지원」을 외치며 생색내기에 열중하던 정부가 오히려 판로를 막아버린 형국이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공공기관의 중소기업 기술개발 지원제도」도 마찬가지. R&D투자가 많은 18개의 부서와 투자기관에서 중소기업에 기술개발을 의뢰하는 형식으로 시작됐지만 올해 중소기업에 예산의 10%정도만 배당될 예정이다. 국방부의 기술개발과제에 참가하려했던 한 중소업체 사장의 얘기. 『신청서류 접수후 8시간가량을 앉혀놓고 취조하듯이 사상검증을 했다. 국가기밀의 유출을 막기위한다는 명목이었다』 그러나 그 중소기업 사장의 희망은 끝내 좌절됐다. 『대부분의 국방예산이 외국산 무기도입으로 쓰이는 것은 국내업체보다 외국업체가 국가기밀을 유지하는데 효과적이라는 뜻인지 묻고 싶다』라는 의문이 제기될 법하다.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지금처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지난 76년부터 정부발주분의 25%를 의무적으로 중소기업간 경쟁으로 조달하도록 규정한 법규때문이라는게 중소업계의 지적이다. 현재 국내의 정부 공공발주분중 99%이상을 대기업이 수주하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파악하고 있다.【성장기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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