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3월 26일] 선생님은 무엇으로 사나

선생님은 무엇으로 사나. 사교육에 치이고 촌지에 휘둘리더니 이제는 비리에 연루돼 법의 심판대에 오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생님들이 속출하고 있다. 나라님과 스승과 아버지의 권위가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신(新)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시대다. 얼마 전에 만난 한 초등학교의 A 교장선생님은 연신 "부끄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 교장선생님은 "(최근의 교육계 비리 사태로) 선생님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다"며 "얼어붙었다"는 말로 교직사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교육청의 학교지도 업무가 마비됐으며 학교는 아이들 교육을 위한 학부형과의 모임까지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성교육이 마지막 존재 이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아야 할 선생님들이 끝없이 추락하는 모습을 보며 '이제 선생님들은 무엇으로 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역할은 학원강사에게 넘어갔다. 이제 사교육을 안 받는 학생은 거의 없다. 그냥 학교수업을 보충하는 수준이 아니다. 어떤 선생님은 아이들한테 "이건 학원에서 다 배운 거지"라며 진도를 나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공부는 학원에서 휴식은 학교에서 한다'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또 어떤 학교에서는 사교육에 대항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선생님들을 아예 입시학원 강사 같은 '지식장사꾼'으로 내몰기도 한다. 그래도 인성교육만은 선생님의 마지막 존재 이유다. 많은 학부모들이 학년이 바뀌는 3월이 되면 어떤 선생님이 아이의 담임이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이들을 가슴으로 보듬는 선생님이 배정되면 마치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이 너무 좋아 표정관리가 안 된다. 반대의 경우에는 '아이가 1년을 어떻게 지낼까' 하는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요즘에는 인성교육마저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 얼마 전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실시한 설문에서 초등학생 2명 중 1명이 가수ㆍ탤런트 등 연예인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A 교장선생님은 이에 대해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좋아서라기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또 다른 조사에서 중학생의 43%가 '돈 많이 버는 직업이 최고'라고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모든 가치의 기준을 '돈'으로 나타내는 황금만능주의의 짙은 그림자가 아이들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삶의 진정한 가치는 '돈'으로 계량할 수 없다는 선생님 말씀이 아이들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고대언어(古代言語)에 불과하다. 이런 조사결과는 벼랑 끝에 선 선생님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설상가상으로 교육계 지도자들이 잇따라 법의 심판대 위에 서고 일부 교장선생님들의 자살 소식마저 이어지고 있다. 교육계 비리 사태는 우리 사회 최후의 보루가 무너졌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들이 어떻게 아이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세상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충고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딱하게 됐다. '그래도 존경받는 선생님이 많다'는 주장만으로는 교직사회의 허물이 덮이지 않는다. 믿음 보내 실추된 명예 찾아줘야 선생님들 스스로 뼈를 깎는 반성을 해야 한다. 지혜를 가르치는 스승이기를 포기하고 지식을 전달하는 직업인으로 만족하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봐야 한다. 날씨가 추울수록 나무가 단단해지듯 교직사회도 이번에 부닥친 처절한 상황을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 사회도 아이들을 선생님들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선생님에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선생님의 명예를 되찾아주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선생님에게 충분한 믿음을 보내야 한다. 이렇게 해도 한번 잃어버린 권위를 되찾으려면 긴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그동안 선생님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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