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12월 16일] 문화 경쟁력과 게이츠헤드

영국 유학 시절 게이츠헤드라는 도시에 간 일이 있다. 영국의 북동쪽 끝 타인강변에 있는 인구 20만의 작은 도시다. 옥스퍼드 유학 당시 잠시 짬을 내 음악회를 보러 간 곳이었다. 도시에 대한 내 첫인상은 우중충하다는 것이었다. 쇠락해가는 공업도시의 전형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시내로 들어가면서 나는 놀라운 모습을 봤다. 건물의 벽과 광장을 가득 채운 색색의 그림과 조형물들. 바로 '공공미술'이었다. 그리고 도심의 곳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많은 돈을 들여 만든 비싼 것들은 아니었지만 마치 삭막한 도심의 콘크리트를 뚫고 피어난 꽃들을 보는 듯한 감동이 밀려왔다. 함께 갔던 영국인 친구에게 사연을 물었다. 친구는 현지인과 한참이나 말을 주고받은 후 내게 놀라운 사실을 알려줬다. 시 당국에서 주민들에게 문화의 즐거움과 도시를 새롭게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벌이는 작업이라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공공미술 하나하나가 주민의 의견수렴을 거쳐 그들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었다. 버려진 공장들이 즐비한 삭막한 도시에 아름다움을 심기 위한 시 당국과 주민들의 협력을 보며 나중에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 안타깝게도 다짐을 지키지 못한 채 나는 귀국했다. 그렇지만 국회의원이 된 후 나는 텔레비전에서 게이츠헤드의 변화된 모습을 봤다. 시 당국은 연극 전공의 예술가에게 도시재생 총감독을 맡겼다. 내가 봤던 그 거칠지만 아름다웠던 거리에 밀레니엄브리지ㆍ발틱현대미술관ㆍ세이지음악당 등 주민 편의시설이 가장 예술적이고 환경친화적인 형태로 만들어졌고 지금 게이츠헤드는 한해에 2,000만명의 관광객이 음악회와 전시회를 위해 찾는 명소가 됐다.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총감독은 "주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120개에 이르는 주민 공동체 모두를 찾아다니며 만장일치가 될 때까지 의견을 수렴했고 외부 관광객이 아니라 철저히 주민을 위한 문화 서비스를 창출하고자 했던 점이 성공요인"이라고 말했다. 나는 다시 한번 탄복했다. 나는 고향인 용인시 처인구에 산다. 용인은 몇 년째 인구증가가 가장 많은 지방자치단체다. 그만큼 개발수요가 많고 이권다툼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큰 시설' 유치에 대한 당국의 집착, 보상이익만 생각하는 주민의 탐욕, 그리고 건설사들의 재빠른 계산이 만들어내는 난개발이 즐비하다. 문화가 경쟁력이라는 말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 현실에서 이를 우리 삶의 패러다임으로 만들기는 어렵기만 하다. 행정당국과 주민들이 개발만이 아니라 문화 경쟁력에서 차별화를 생각하는 그런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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