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평채 가산금리가 연일 사상최저 행진을 벌이고 있다.
8일 미국 국채(TB)에 대한 5년물 외평채 가산금리는 0.14%포인트까지 낮아졌다. 외평채 가산금리는 국제채권시장의 기준물이 되는 TB 수익률에 얼마를 더 얹어주느냐를 말한다.
외평채 가산금리가 10bp(0.1%포인트)대를 기록한다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투자자산으로 분류되는 미국 국채와 우리나라 외평채 금리가 거의 같은 수준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IMF외환위기 직후 처음 한국 국채가 국제시장에 발행됐을 때 5년물의 가산금리가 무려 3.35%포인트였던 점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외평채가 발행되기 전에 한국 정부채를 대변했던 산업은행채의 가산금리는 외환위기 직후 10%까지 치솟아 국가 파산을 예고하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외 위상이 최근 들어 급상승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그러나 외평채 가산금리 하락이 한국의 신인도가 급작스럽게 개선됐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외국인 수요보다 국내 기관의 수요가 급증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한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현재 한국은 외환보유액이 충분하고 정세불안 요인도 심각하지 않아 대외 신인도 하락의 요인이 별로 없다”면서도 “그러나 최근의 외평채 가산금리 하락세는 국내 수요증가 영향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날 한국은행이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박영선 의원(열린우리당)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 국내 은행은 외화채권에 총 9억940만달러를 투자했지만 이중 7억8,200만달러는 ‘한국물’이었다. 최근 늘어난 국내 기관의 해외채권투자 중 86% 가량이 사실은 우리 정부나 기업이 해외에서 발행한 채권(코리안페이퍼)이었다는 뜻이다.
이광주 한국은행 국제국장은 “최근 국내 보험사ㆍ은행 등 기관들의 해외채권투자가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국내 기관들이 해외채권 발행기관의 신용도를 평가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많다”며 “이 때문에 실제로는 해외에서 발행된 한국정부 보증채권을 많이 사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외평채 가산금리 하락은 최근의 국고채 수익률 하락과도 연관이 있다. 국내 기관들의 국채 수요가 워낙 많다 보니 해외 발행 외평채 수요로까지 확산된 것.
김 연구위원은 이처럼 국내외를 막론하고 안전자산인 채권수요가 늘고 있는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국내 투자자들이 향후 우리나라 성장잠재력이 낮아질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라며 “다른 곳에 투자해봤자 채권수익률보다 높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러한 추세로 인해 우리나라가 대외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외평채 가산금리의 하향 안정세는 어느 정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 현재 우리 정부가 대외 신인도를 의식, 외평채 가산금리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기 때문에 금리가 급격히 높아질 경우(가격하락시) 기금 등을 동원해 금리를 다시 떨어뜨리는 ‘안전판’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국내 기관들의 기대도 외평채 수요를 부추긴 요인으로 지적됐다.
금융계의 한 전문가는 최근 외평채 사상최저 행진과 관련, “정부가 외평채 발행물량을 늘리면서 가산금리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국민연금 등 ‘큰손’을 동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 연구위원은 “과거에는 외평채 가산금리가 대외 신인도의 ‘바로미터’로 쓰였지만 최근 국내 수요가 워낙 많아져 이러한 지표의 의미는 많이 퇴색됐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