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관리마저 허술한 산업공동화

국내기업의 해외설비이전이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서울경제가 관세청에 의뢰해 국내 최초로 파악한 바에 따르면 해외로 설비를 옮긴 기업은 지난 98년 368개사였으나 해마다 30% 가량씩 늘어 2002년 1,070개사나 됐고 올해도 9월 말까지 이미 790개사가 공장을 다른 나라로 옮겼다. 다시 말해 하루에 3개 업체 꼴로 해외로 이삿짐을 싼 셈인데 문제는 과거 섬유ㆍ신발 등 노동집약 업종이 생산기지를 옮긴 것과는 달리 전자통신장비ㆍ석유화학 등 기술ㆍ자본집약 업종의 이탈이 점차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대기업 생산시설이 이전하면 연구개발기능과 부품공급업체까지 따라서 이전해 산업공동화가 기술공동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걱정이다. 사실 기업의 해외이전 문제는 어제 오늘 불거진 것은 아니다. 생산성 증가를 상회하는 임금 상승과 잦은 노사분규, 난마처럼 얽혀있는 각종 규제 때문에 가격경쟁력을 상실하는 기업이 그나마 생존할 수 있는 곳은 낯설지만 임금이 낮은 중국 등 후진개도국일 것이다. 하지만 임금이 싼 해외로 이전하는 것은 일시적인 미봉책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근원적인 해결책은 못 된다. 기술이전으로 개도국들도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추격하는 만큼 안심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이전한 4,200여 업체 가운데 중국을 선택한 경우는 71%나 된다. 그러나 중국진출기업의 21.1%가 투자에 실패했고 13.7%는 곧 철수할 예정이며 다시는 재투자하지 않겠다는 업체가 41.7%나 된다는 대한상공회의소의 최근 조사는 무분별한 해외진출이 남긴 상처가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가 아직 해외이전 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조차 내놓지 못하고 엄격한 관리도 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임에 분명하다. 특히 국내공장 전체가 나가는지 아니면 일부만 이전하는지도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정부 발표 수출통계에 현물투자 방식의 공장설비 이전이 포함되는 실정이니 한심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국내의 연구개발을 활성화하고 제품설계 단계에서부터 원가관리에 나서는 등 보다 확고한 가격 및 제품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제조업 공동화에 대비한 근원적인 대책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눈앞에 기업의 해외이전이 봇물 터지듯 넘쳐나고 있는 만큼 정부는 손을 놓고 바라보기만 있을 것이 아니라 명확한 실태 파악에 나설 필요가 있다. 진단이 분명해야 바른 처방이 가능하듯 대책 마련에 앞서 철저한 현황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한영일기자 hanu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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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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