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발표된 LG그룹를 포함, 4대 그룹의 19개 금융계열사들은 98년이후 80여가지 각종 법률과 규정을 위반했고 고객 돈 횡령, 계열사 지원, 부당 거래등의 총 규모가 무려 57조원에 달한다.4대 그룹 간판을 달고 있는 보험, 증권, 투신, 종금 등은 예외없이 재벌의 사(私)금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고객이 맡긴 돈을 계열사에 변칙 지원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현대투신운용과 현대투신증권은 98년 6월부터 99년 3월까지 9개월간 무려 2,033억원의 고객 돈을 빼돌렸다. 양사는 수백번의 채권거래를 하면서 회사채 금리를 조작, 한번에 수억에서 수백억원씩 돈을 챙겼다. 고객 돈을 도둑질한 셈이다.
문제는 이같은 불법, 탈법행위가 4대그룹 금융계열사에서 공통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상습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현직 보험사, 투신사, 증권사 사장들은 고객 돈을 맡아 잘 관리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재벌 오너의 자금조달원으로서 열심히 뛸 생각만 한 것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것이 당국으로부터 문책을 받으면 오히려 다른 계열사의 높은 자리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조직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일단 조직을 위해 불법을 저지르면 뒤는 조직이 책임져 준다는 그릇된 충성심이 금융사 임직원들 사이에 퍼져있는 것이다.
이같은 조직논리와 충성심은 금융기관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결국은 금융사를 망하게 만든다. 어떤 고객이 자기 돈을 훔치는 금융사에 돈을 맡기겠는가.
74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은 행정부 내의 한 제보자로 인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이 사건을 특종 보도한 워싱턴포스트는 그 제보자를 「깊은 목구멍(DEEP THROAT)」라고 불렀다.
재벌 금융사에도 이같은 깊은 목구멍이 필요하다. 정도(正道)를 위해 조직을 배신하는 「깊은 목구멍」들이 많이 나타나야 불법을 조장하는 잘못된 조직논리를 파괴할 수 불법행위를 지시하는 상관의 명령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비리를 폭로하는 정의로운 목소리만이 재벌이 지배하는 금융계를 해방시킬 수 있다.
/금융부 정명수 기자
ILIGHT3@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