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호르몬 가운데서도 도파민, 페닐에틸아민, 그리고 옥시토신 등 세 가지 물질은 특히 사랑의 감정 또는 행위와 관련하여 흘러나오는 호르몬들이다. 흔히 ‘큐피드의 화살’에 비유되는 도파민은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 ‘콩깍지’를 씌우는 신비의 작용을 하는 호르몬이다. 한번 사랑하는 마음을 품게 되면 그 대상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예뻐 보이고 무슨 짓 무슨 말을 해도 다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로 도파민의 작용 때문이다. 물론 지나치면 환각작용으로 현실감각을 잃게 될 수도 있지만, 이 호르몬의 포로가 돼있는 한 그 행복감은 거칠 것이 없다.
페닐에틸아민이 흘러나오면 멀리서 동경심만 갖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다가가 끌어안고 싶은 충동과 그를 소유하고 싶은 집착이 생긴다. 사랑의 감정에 빠졌을 때, 상대에게 정신을 빼앗기는 것이 도파민에 의한 작용이라면, 물리적 욕구가 생기는 것은 페닐에틸아민에 의해서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아무 것도 거칠 것 없이 행동으로 돌입할 수 있는 용기와 충동 또한 페닐에틸아민의 작용으로 생긴다.
사랑의 완성 단계에서 흘러나오는 최상의 애정 호르몬은 옥시토신이다. 이 호르몬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이라도 아낌없이 내줄 수 있는 지고지순한 ‘순정’을 이끌어낸다. 이 세상에 목숨까지 내줄만한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배우자를 위해서? 막 첫 밤을 지낸 신혼부부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일 게다. 그렇다면 연인을 위해서? 그건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다. 사랑하는 이웃을 위해서? 그건 성자에게나 가능한 얘기일 것이고.
보통 사람이 자기 목숨까지라도 내놓을 수 있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자식을 위한 사랑뿐일 것이다. 아기를 사랑하는 엄마의 감정. 이 지고지순의 사랑을 가능케 하는 ‘모정(母情)의 호르몬)’이 바로 옥시토신이다. 남녀 사이에 사랑이 무르익어 이 호르몬이 분비되는 단계에 이르면 여성의 몸은 임신 가능한 상태로 활짝 열리게 되고, 심리적으로도 ‘당신 닮은 아기를 낳고 싶어요’와 같은 대사가 가능한 상태에 돌입한다. 물고기들이 산란장소를 준비하거나 새들이 서둘러 둥지를 짓는 것도 이 호르몬이 왕성해질 때의 일이다. 산란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모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어미 연어들도 이 순간에는 옥시토신의 지시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
옥시토신은 임신 뿐 아니라 산란, 출산, 육아의 전 과정에 작용하는데, 이를테면 새끼에게 먹일 젖이 잘 나오도록 하는 것도 옥시토신이 하는 일 가운데 하나다. 옥시토신은 젖을 잘 나오게 하는 물질인 동시에 젖을 자극함으로써 활발히 분비되는 물질이기도 하다. 어린 아기가 엄마의 젖꼭지를 물고 자극하면서 또 다른 손으로 반대편의 유방을 잡고 있을 때 엄마의 몸에서는 옥시토신이 활발히 분비되면서 젖의 분비가 활발해지게 된다. 젖소에게서 우유를 짤 때 먼저 유두를 따스한 물로 씻어주면서 잘 문질러 마사지를 하는 것은 세척과 동시에 유두를 자극해 옥시토신 분비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혹 젖소의 젖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옥시토신 함유물질을 주사하기도 하는데, 이 호르몬을 한 방울만 주사해도 단 10여초 사이에 우유가 절로 흘러나온다고 ! 한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동안 엄마는 옥시토신의 작용으로 심리적 안정감도 얻게 된다. 이 때 엄마와 아기 사이에는 헌신적이고 무조건적인 애정관계가 형성된다. 젖먹이에 의해 촉발된 옥시토신은 출산으로 늘어진 자궁의 근육을 수축시켜 질의 원상회복에도 큰 도움을 준다. 자연의 메커니즘은 어떤 의술보다 완벽하여 신비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