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요 신흥국들에서 빠져나온 뭉칫돈 규모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맞먹는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상되는데다 신흥국 특유의 근본적인 체질 문제가 더해진 결과라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경기둔화에 시달리는 중국, 원자재 가격 급락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러시아·브라질 등과 함께 부채 규모가 큰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국가로 거론된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글로벌 금융그룹 ING에 따르면 주요 신흥국 15곳의 지난해 4·4분기 자본 순유출 규모는 2,502억달러(약 274조6,945억원)로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후인 지난 2008년 4·4분기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하반기 전체 기준으로는 3,924억달러(약 430조8,159억원)가 빠져나갔고 올 1·4분기 순유출 규모 또한 직전 분기(2,502억달러)를 웃돌 수 있다는 게 ING의 전망치다. 이 예측이 현실화되면 3분기 연속 자본 순유출을 기록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가 최고조였던 시점(2008년 3·4분기~2009년 1·4분기)과 맞먹는 수준의 돈이 신흥국을 이탈하는 셈이 된다.
신흥국 자본유출을 자극한 촉매제는 미국발(發) 통화 긴축 및 이에 따른 강달러 현상이다. 지난 금융위기 당시 선진국에서 푼 천문학적 유동성이 높은 수익률을 좇아 신흥국에 유입됐다가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가 본격화되자 본국으로 회수되고 있는 것이다. 2013년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 신호만으로 펀더멘털이 부실한 신흥국에서 대규모 자금이 이탈했던 이른바 긴축발작(taper tantrum)과 유사한 상황이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이 같은 외부변수 못지않게 신흥국 자체의 경제성장 둔화가 글로벌 투자자들의 엑소더스를 부추기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스스로 신창타이(新常態·뉴노멀)를 선언하며 고속성장 시대의 종언을 알린 중국과 유가 등 최근 가격 폭락기에 접어든 원자재 시장 때문에 리세션(경기후퇴)에 시달리는 러시아가 가장 큰 자본유출을 겪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마르텐얀 바쿰 ING투자운용 선임 신흥시장 스트래티지스트는 "원자재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은 브라질이나 러시아·콜롬비아·말레이시아 등에는 앞으로 더욱 힘겨운 시기가 닥칠 수 있다"며 "태국과 중국·터키처럼 부채가 지나치게 많은 곳도 위험하다"고 말했다.
특히 신흥국 부채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 경제에도 경고음이 들어왔다. 맥킨지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 한국의 가계, 정부, 비금융 부문 기업 부채 등 총부채 수준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31%로 신흥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이를 포함해 2013년 말 현재 신흥시장의 총부채는 49조달러에 달하고 2007년 이후 늘어난 전 세계 부채 중 47%가 이머징마켓이 갚아야 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