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풍요ㆍ죽음이 교차한 한해

뉴욕 남단의 월가는 트리니티 성당에서 맨해튼 섬 동쪽 이스트강까지 500m 남짓한 짧은 거리다. 국제금융시장의 심장인 이 거리는 성당 무덤의 죽음과 강물이 의미하는 풍요를 동시에 상징한다. 시가총액으로 수십조 달러의 뭉칫돈이 움직이는 이 시장에서 올해 내로라는 금융시장 거물을 죽었으며, 동시에 미국 경제 회복에 힘입어 이스트강의 넉넉함 만큼 엄청난 부가 창출됐다. 올해 뉴욕 금융가에서 불명예로 추락한 대표적인 인물이 리처드 그라소 전 뉴욕증권거래소(NYSE) 회장이다. 증시가 꺾어져 많은 투자자들이 엄청난 손해를 본 3년 동안 그는 엄청난 연봉을 받았고, 이사회를 장악해 퇴직금을 포함해 2억 달러에 가까운 수입을 받기로 계약을 체결했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아 사퇴했다. 그라소의 후임을 맡은 존 리드 전 시티그룹회장은 시티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샌디 웨일 회장에 밀려났다가 당당히 뉴욕 증권가의 수장에 올랐다. 이에 비해 웨일 회장은 계열사인 살로먼 스미스바니의 애널리스트 헨리 블로젯에게 특정회사를 좋게 평가 해주라는 언질을 주었다고 해서 비싼 대가를 치르고 검찰 및 규제당국과 합의를 하는 수모를 당했다. 봉급쟁이들이 봉급의 일부를 떼어 주식투자를 맡기던 뮤추얼 펀드들이 수난을 당했다. 이름 하나로 수많은 회원들을 모집했던 유명 펀드매니저들이 트릭을 쓰다가 줄줄이 옷을 벗었다.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 거래소 트레이더는 물론 NYSE 회장에 이르기까지 뉴욕 금융시장의 주요 참여자들이 연이어 월가를 떠나는 동안에도 주가는 치솟았다. 지난해 여름 `더 이상 증권은 싫다`고 하던 투자자들이 이라크 전쟁이 끝난 후 시장을 다시 찾았고, 덕분에 뉴욕 증시의 주가는 10년만에 찾아보기 힘든 초유의 호황을 누렸다. 90년대 연말처럼 올해도 백만 달러 이상의 고액 보너스를 받은 펀드매니저들이 많이 나온 풍성한 해였다. 월가의 서쪽 편에는 더 큰 죽음의 웅덩이가 패여 있다. 2년전 테러로 세계무역센터 빌딩 두동이 무너진 그라운드 제로다. 뉴욕 금융시장은 이제 더 이상 거시와 미시, 수요와 공급의 경제적 요소만으로 움직이던 시대는 지났다. 그라운드 제로의 상처처럼 지정학적 요인이 시장의 새로운 변수로 부상한 것이다. 풍요와 죽음이 교차한 뉴욕 월가는 다우존스 지수 1만 포인트, 나스닥 2,000 포인트를 돌파한 가운데 한해를 마감하고 있다. <뉴욕=김인영특파원 in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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