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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기자가 찾은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마을'. 언뜻 보니 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평범한 동네였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자 주민들이 스스로 일궈놓은 도시재생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학교·어린이집·책방·카페·극장, 그리고 집까지 모두 주민들이 뜻을 모아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성미산마을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20여년. 1994년 공동육아를 목표로 모인 주민들이 어린이집을 만든 것이 시초가 됐다. 이후 주민이 '필요한 것'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둘씩 늘려가면서 느리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이 이어졌다.
입주자 모집부터 설계·시공, 입주 후 관리까지 주민들이 직접 하는 모임인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는 벌써 다섯 번째 주택을 짓는 중이다. 성미산마을 운영자 중 한 명인 박미라씨는 "지난 20년 동안 마을 공동체가 성숙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주민이 하고 싶은 사업을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재생의 가장 큰 동력은 주민=도시재생 전문가들은 성미산마을의 사례가 '관'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방식에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그림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자금을 지원해 커뮤니티시설을 지어주고 끝나는 '하향식 재생'이었다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서울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의 한 관계자는 "도시재생은 결국 주민이 편안하고 오래 살자는 것인데 그동안의 재생사업에는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이 빠져 있었다"며 "주민이 변화의 내용을 주도하고 정부와 전문가가 지원하는 방식이어야 지속 가능한 재생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이 느껴온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변화를 고민하는 것이 재생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이 같은 움직임이 늘고 있다. 전남 순천의 경우 8개 동에 거주하는 주민 60여명이 회의를 거듭한 끝에 순천 원도심에 필요한 재생사업들을 신청,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선정한 '도시재생선도지역'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관이나 전문가가 아닌 주민이 도시재생사업을 주도해 정부의 지원금을 받게 된 것이다.
단독주택 밀집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대구 수성구의 '해피타운 프로젝트'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도 주민의 역할이 컸다. 구청이 주민 의견에 따라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다 보니 주민 만족도가 높아져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이어졌다. 현재 '느지마루공동체협동조합'을 설립, 농산물 직거래장터를 열어 농민들과 지역주민들이 상생하는 모델도 만들었다.
◇전통적 개발논리 떨쳐내야=문제는 여전히 전통적인 재개발·재건축 논리에 익숙해 도시재생을 수익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주민이 많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일시에 모인 대도시일수록 의견을 함께하는 주민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뉴타운이 좌절된 지역을 방문해보면 주민 스스로 작은 재생을 일궈간다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들이 많다"며 "당장 눈에 보이는 사례가 부족하다 보니 주민을 설득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주민 주도로 이뤄지는 도시재생이 꾸준히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도 숙제다. 주민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지만 이들이 수익모델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이 상당한 만큼 관의 협조도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최창규 한양대 교수는 "주민이 재생의 내용과 결과를 주도하더라도 관에서 행정과 전문가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재생의 단위를 더 작게 하면서 잠재력이 부족한 동네까지도 재생시킬 수 있는 민관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