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기업인 vs 정치인

국민과 소통·공감하면서<br>국가정책 운영 능력 갖추고<br>새 성장동력 비전 제시 등<br>큰 그림 그릴 대통령 나와야


지난 1992년 미국 대선 때의 일이다. 양당 체제의 미국 대선에 제3의 무소속 후보로 뛰어든 인물이 있었다. 바로 텍사스의 성공한 기업가이자 정보기술(IT) 업체인 EDS의 로스 페로 회장이었다. 그는 부패한 정치권과 무기력한 행정부에 염증을 느끼던 미국인들에게 어필하며 선거 초반 폭발적인 인기를 이끌어냈다. 그의 참신한 이미지와 기업인으로서의 강점은 한때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할 만큼 초반 판세에도 돌풍을 몰고 왔다. 하지만 페로는 본선을 거치면서 정부의 특혜지원설과 성격적 결함 등이 속속 드러나면서 결국 반짝 후보로 주저앉고 말았다. 페로는 4년 후에도 국민적 지지를 믿고 대선에 또다시 도전했지만 현실정치의 높은 벽을 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12월 대선에 출전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후보가 한달 간격으로 선출된 데 이어 기업인 출신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도 1년여의 장고 끝에 국민후보로 나서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안 원장이 국민들로부터 호감을 얻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의사를 그만둔 그가 컴퓨터 바이러스 전문가로 변신해 안철수 연구소를 세우고 백신프로그램인 V3를 무상 공급했다는 점이다. 여기다 주식을 사원들에게 공짜로 나눠주고 외국 업체의 거액 인수제의를 거부했다는 것도 사람들의 애국심을 자극하고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가 회사를 경영할 때 여느 기업인과 달리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데 앞장섰다는 점이 가장 소중한 정치적 자산인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역대 선거를 돌아보면 기업인들이 대선경쟁에 뛰어든 사례가 적지 않다. 정주영 고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92년 대선 당시 그룹 자원을 총동원해 대선에 출마했다가 이래저래 불이익을 당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도 지난 대선에서 '사람 중심의 진짜 경제'를 내걸고 창조한국당까지 만들어 대선에 도전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그는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안철수 원장에게 "정당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며 자신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물론 기업가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를 살려달라는 국민의 간절한 여망을 발판으로 삼아 갖은 고비를 딛고 청와대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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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업 경영과 국가 운영의 세계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과거 개발독재 시절과 달리 요즘의 대통령은 사회 각계 각층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인 시절처럼 자신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 신속히 결정하는 방식이 오히려 국가 경영에는 해가 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임기 내내 소통의 단절이라는 비판에 시달린 것은 단적인 예다. 미국 공화당의 밋 롬니 후보도 베인앤컴퍼니 CEO(최고경영자)의 경력을 앞세워 열심히 뛰고 있지만 아직까지 열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관측이 높다. 우리보다 기업인을 우대한다는 미국에서는 아직까지 비즈니스맨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된 적이 없다고 한다. 성공한 기업인이 정치에서도 성공하기란 그만큼 쉽지 않다는 얘기다.

국민들이 이 시대의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공감과 소통, 그리고 국가정책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 능력일 것이다. 더욱이 나라 경제가 어려운 터에 국민의 아픔을 아우르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비전을 제시하는 큰 그림을 그리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중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를 하나 전할까 한다. 보통사람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기업인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정치인은 뭘까. 바로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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