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4월 28일] <1682> 드골 사임


'나는 프랑스공화국 대통령으로서의 직능 행사를 중지한다. 이 결정은 정오부터 발효한다.' 샤를 드골이 1969년 4월28일 0시10분에 밝힌 하야 성명의 전부다. 사임 명분은 국민투표 패배. 상원 개혁과 행정체제 개편을 위한 국민투표에서 패배(47대 53)하자 약속대로 대통령직을 내던졌다. 드골의 퇴진은 세계 각국에 충격을 안겼다. 2차대전의 영웅으로 전후 '위대한 프랑스'라는 기치 아래 10년 이상 권좌를 지켜온 거물 정치인이 하루아침에 사임하다니…. 명분 속에 숨은 퇴임의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무엇보다 드골은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 집권 초기에 알제리 독립전쟁 종식과 인플레이션 억제, 독일과의 관계개선, 독자적 핵전력 구축 같은 위업을 달성했음에도 드골은 조바심 속에서 살았다.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고 여기는 듯 고비를 만날 때마다 국민투표에 의존해 국면을 전환시킨 드골은 국민투표로 물러났다. 사임의 두번째 배경은 금본위제도에 대한 집착. 금 1온스당 35달러로 묶인 가격을 두 배인 70달러로 올리고 금본위제도로 복귀하자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통화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지게 될 미국은 고개를 저었다. '드골은 금 생산국인 소련의 대리인'이라는 혹평 속에 미국의 견제로 프랑스 경제가 나빠졌다. 결정적인 사임요인은 5월 위기. 학내시설 개선 요구로 시작돼 노동쟁의를 거쳐 체제 부정으로 번진 1968년의 5월 위기를 드골은 국민투표로 넘었으나 후유증이 컸다. 경제성장률도 10년 재임기간 중 가장 낮은 4.4%에 머물렀다. 결국 드골은 사임 1년 반 만에 80세 나이로 사망했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다. 드골이 제기했던 '달러화 신뢰도 하락'이 바로 그것이다. 드골 시절보다도 상황이 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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