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세자는 뒤주에서 죽지 않았다.' 영조의 명에 따라, 혹은 정조의 요청에 의해 '승정원 일기'에서 세초(洗草)로 지워진 부분이지만,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굶어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 소설 '충신'은 그 씻겨나간 역사의 의문점에서 시작된다. 영조 당시 영의정 이천보, 좌의정 이후, 우의정 민백상에 이르는 '삼정승의 자살'과 연관된 사도세자의 죽음은 매독이 원인이라고 본 소설이다. 상상으로 써나간 역사 미스터리지만 정사(正使) 속 인물들의 관계가 유기적이라는 점에서 충격이 자못 크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소설을 쓴 사람이 벨기에 국적이라는 것. 1973년 부산에서 태어난 저자는 7살에 벨기에로 입양돼 한국어는 말하지도 쓰지도 못하고 네덜란드어를 모국어로 삼고 있다. 영국계 보험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그녀의 손에, 가치를 판단해 달라는 의뢰와 함께 18세기에 쓰여진 '진암집(晉菴集)'이 도착하면서 소설이 태동했다. '진암집'의 저자는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천보(李天輔)라는 인물인데, 책의 가치 감정을 위해 인물을 조사하다 보니 사망 시점과 원인이 불분명했던 것. 실록에는 이천보가 67세의 천수를 누리고 병사한 것으로 나오지만 그 외의 기록에는 자살했다고 전해진 것에서 작가적 상상력이 뻗어나간다. 책은 사도세자의 병이 깊어지는 것을 두고 염려하는 세 정승의 비밀 회동에서 시작한다. 총명하고 어질던 세자는 알 수 없는 병으로 광증과 고통을 호소하지만 병의 단서와 치유방법은 미궁으로 빠져들어간다. 한국어를 말하지도 쓰지도 못하는 저자가 한자와 그리스어를 섞어가며 쓴 책이다. 그 글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지만 역사 추리소설로 읽기에는 불편함이 없다. 13개 국어에 능통한 저자가 다양한 언어로 접한 다채로운 경험이 상상력의 증폭을 이끌었다. 인세 전액은 국내 수녀원에 기탁된다. 1만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