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세기 초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고리대금업 등으로 실물 경제의 발전을 가로막던 금융업자들을 ‘천민자본주의(賤民資本主義)’로 경멸했다. 현재 우리 은행들은 100년 전의 이 같은 비판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지난해 은행권의 수수료 수익은 4조원을 넘겨 당기순이익의 54.8%를 차지했다. 2년 전 비중 28.5%의 두배에 가깝다. 은행들이 전통적인 예대 금리 수입에서 벗어나 수익원을 다양화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수수료의 질이다.
지난해 수수료 이익에서 펀드 등 판매 수수료와 타 기관 자산의 처리수수료 등을 합산한 대리사무취급 수수료는 전체의 40.4%로 나타났다. 반면 미국 상업은행의 경우 이 비중은 8.5%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수수료 이익은 인수합병(M&A) 자문 등 기업 컨설팅에서 올리고 있다.
더구나 국내 은행들이 고액의 자산가에 대해 각종 수수료의 면제 또는 할인 혜택을 주는 것을 감안하면 수수료 이익의 상당 부분은 서민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처럼 국내 은행들은 서민 상대로 손쉬운 돈놀이에 안주하면서도 저신용자들을 위한 신용대출 상품은 외면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은행 임직원들은 국민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고연봉을 받고 있다.
이를 두고 “기업이 수익 사업에 치중하고 이익이 나면 높은 연봉을 주는 게 뭐가 잘못인가”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바로 은행들의 전력과 공익성 의무 때문이다. 과거 은행들은 외환위기 때 무분별한 대기업 대출로 170조원의 공적자금을 받아 겨우 살아남았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의 와중에도 부동산 대출, 원화 강세에 베팅한 환투기 등으로 잠재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외화유동성 260억달러, 원화자금 40조원을 지원받았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공유화하는 것이야말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다.
국민 혈세로 생존한 은행들이 더 이상 서민들을 문전박대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은행들은 진입 제한 등 각종 혜택을 받고 있는 만큼 공익성 확대의 의무가 있다. 이제라도 독자적인 수익 모델 구축과 비용 절감 등을 통한 서민금융 지원에 나서야 한다. ‘비 올 때 우산 뺏는’ 은행들을 좋아할 국민들은 아무도 없다. 은행 스스로 서민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