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노조'의 대명사로 미국 자동차 경쟁력 추락의 주범으로 꼽히는 미 자동차노조가 회사로부터 일자리를 보장 받는 대신 임금을 절반으로 삭감하고 그 자금을 시설투자에 쓰는 데 동의했다.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의 몰락과정에서 특권의 상당 부분을 내놓은 노조가 이제서야 뒤늦게 생존을 위한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8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전미자동차노조(UAW)는 디트로이트 인근 GM 오리온공장에 종사하는 1,550명 중 40%의 최저 임금을 종전의 절반인 시간당 14달러로 삭감하는 데 동의했다. GM는 임금 삭감분을 합쳐 총 1억5,500만달러를 소형차량 증설에 투입하기로 했다. 현재 GM의 노동자 최저 임금은 시간당 28달러다. 종전까지 노조는 신입 노동자에 대해서만 50% 임금삭감에 동의했다. 오리온 공장의 노사합의는 노조가 그나마 갖고 있던 기득권마저 과감하게 내던진 것이다. UAW가 기존 노동자의 파격적인 임금삭감에도 동의한 것은 일자리 때문. 지난해 위기에서 34만명이 해고되는 뼈아픈 경험을 한 노조가 일자리 확보를 최우선 목표로 정한 것이다. UAW 부위원장인 게리 버나드는 "위기를 겪으면서 21세기 자동차 산업의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며 "비록 임금을 절반으로 줄었지만 미국에서 일자리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 자동차노조는 GM과 크라이슬러 몰락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지난 1970~1980년대 미국 '자동차 빅3'가 전성기를 구가할 당시 복지혜택을 꾸준히 늘려왔던 UAW는 1990년대 들어 일본 자동차에 쫓기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특권을 포기하지 않았다. 기득권을 지키는 데만 열을 올린 나머지 퇴직자가 더 많은 복지혜택을 받는 기형적인 구조가 만들어졌다. 실제 GM은 65만명이나 되는 퇴직자와 그 가족에게 수당과 건강보험 혜택을 제공했다. 이로써 자동차 한 대 가격에 포함된 건강보험료만 1,500달러에 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성능과 가격을 무기로 일본 자동차 업체가 미국시장을 빠르게 잠식했지만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노조에 발목이 잡혀 제대로 대응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결국 GM과 크라이슬러는 수백억달러의 누적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지난해 파산했으며 이후 정부에 매각돼 재무부의 규제를 받고 있다. 파산과정에서 수세에 몰린 노조는 귀족처럼 누려왔던 특권을 모두 뺏긴다. 회사가 보장하던 퇴직자 건강보험은 UAW가 운용하는 기금으로 넘겨졌다. 퇴직자건강보험기금(VEBA)은 규모가 450억달러이며 운용 수익금이 줄어들 경우 건강보험 혜택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임금도 줄었다. GM의 노동자 평균 급여는 파산 전 시간당 75달러에서 현재 57달러로 줄었다. GM은 이것에 그치지 않고 임금을 더 낮춰 미국에서의 생산비용을 아시아와 멕시코 등 해외 생산비용 수준으로 떨어뜨리기를 원하고 있다. 임금삭감에 합의한 오리온 공장에서는 오는 2011년부터 소형차를 생산해 미국시장 전역에 공급할 계획이다. 이는 현재 GM대우에서 수입해 '시보레 아베오'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는 차를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 현지에서 생산되는 소형차는 혼다의 시빅이 사실상 유일하다. 임금삭감으로 투자여력도 늘었다. GM은 7일 오리온 공장에 1억5,500만달러를 투자해 두 번째 소형차 모델을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UC버클리의 하레이 사이켄 교수는 "노조가 보다 안정된 미래를 위해 이 중 임금체계를 받아들였다"면서 "회사 재건을 위해서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노조의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