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골프 성지… 위스키 향… 그리고 중세의 숨결

스코틀랜드 인버네스<br>네른 GC 등 명코스 즐비… 골프 발상지서 멋진 티샷<br>'술 익는 마을'서 맛보는 위스키 원액 혀끝이 짜릿<br>괴물 '네시' 산다는 네스호… 古城으로의 시간여행은 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인버네스는 네스강을 따라 도시 곳곳에 올드 세인트 스테픈 처치 등 9개의 교회와 건축물·다리 등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금방이라도 킬트를 입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구슬픈 백파이프 연주를 들려줄 것만 같다. /사진제공=스코틀랜드관광청

웅장한 자태의 인버네스 성 아래 유유히 흐르는 네스강.

네른 골프클럽의 항아리 벙커. 크기는 작고 턱이 높아 탈출하기 어렵다.

스페이사이드의 글렌버기 증류소.


"골프와 위스키는 스코틀랜드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준 선물입니다." 두 가지의 발상지가 진짜 이곳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지 않지만 진위 여부를 떠나 골프와 위스키에 대한 스코틀랜드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자연이 만들어낸 골프코스인 링크스, 천혜의 자연이 빚어낸 위스키가 적어도 수백년 동안 발상지라는 지위에 걸맞은 우월성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코틀랜드 동북부 인버네스(Inverness)는 골프와 위스키, 그리고 중세의 숨결까지 곁들여 중독성 강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골프 발상지에서 경험한 두근두근 라운드=스코틀랜드는 골프의 성지(聖地)로 여겨지는 곳이다. 인버네스는 골프의 고향이라 불리는 세인트앤드루스보다 북쪽에 있다. 예로부터 영국의 북쪽 지역을 일컫는 하이랜드 지방의 중심지였고 네스강 하구라는 뜻의 지명에서 보이듯 괴물의 출몰 소문으로 잘 알려진 네스호 근처에 있다. 어린 시절에 이곳을 찾았다면 공룡을 닮은 괴물 '네시'가 산다는 네스호에 마음이 끌렸겠지만 발걸음은 링크스를 향했다. 링크스는 북해에서 부는 바람이 오랜 세월 실어 나른 고운 모래가 쌓인 둔덕 지형에 코스를 앉힌 곳으로 단순한 해안 골프장과 구분된다. 황량하지만 자연과 가장 흡사한 골프코스다. 인버네스 시가지에서 10여분 만에 도착한 곳은 네른(Nairn) 골프클럽. 상징 문양에 새겨진 클럽 창립 연도 '1887'에 일찌감치 압도됐다. 건설된 지 얼마 후 저 유명한 올드 톰 모리스가 레이아웃을 전면 새롭게 디자인했다고 한다. 가뜩이나 움츠려 있는데 1번홀 티잉그라운드 주변에 모였던 몇몇 현지인이 동양인들의 출발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나마 유일한 위안거리라면 악명 높은 바람은 강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굳은 몸과 마음으로 친 볼은 오른쪽으로 크게 휘어지더니 페어웨이 오른쪽 모레이 하구의 북해 바닷물에 빠지고 말았다. 첫 7개 홀 중 6개 홀은 모두 오른쪽이 해안이라 잔뜩 왼쪽을 겨냥해야 했다.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 부총리를 지냈던 비스카운트 화이틀로도 핸디캡 0의 수준급 골퍼였지만 바다에 빠뜨렸다는 얘기로 스스로를 안정시켰다. 몸이 풀린 뒤부터 진짜 공포의 대상은 벙커와 러프였다. 링크스의 항아리 벙커는 크지 않고 턱이 보통 1m 이상으로 높다. 페어웨이는 단단해 볼이 잘 구르기 때문에 벙커에 빠진 볼도 벙커 입구 쪽이나 가운데보다는 앞쪽 벽 아래 멈추기 십상이다. 한두 차례 그린 방향으로 샷을 시도하다 포기하고 옆쪽이나 심지어 뒤쪽으로 탈출하지만 이미 4~5타는 허비한 상태. 벙커에만 빠졌다 하면 십중팔구 '양파(더블 파)'였다. 페어웨이는 좁아 보이진 않았으나 지키기가 쉽지 않다. 벗어나면 곧장 제멋대로 자란 잡풀과 덤불이다. 동반한 현지 캐디가 떨어진 지점을 확인해도 볼은 보이질 않는다. 이튿날 무너진 자존심 회복에 나섰지만 결국 이틀 타수 합계가 201타였다. 6월 하순부터는 해가 오후11시까지 지지 않는 백야 현상 덕분에 우리의 둘째 날 티오프 시간은 놀랍게도 오후5시45분이었다. 이 골프장에선 1999년 영ㆍ미 남자 아마추어골프 대항전인 워커컵이 열렸고 내년에는 여자 아마 대항전인 커티스컵이 개최된다. 지척에 신흥 명문인 스튜어트캐슬 골프장이 있고 북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에든버러 부근에 카누스티ㆍ세인트앤드루스 등 귀에 익은 명 코스들이 즐비하다. ◇술 익는 마을에서 음미하는 위스키 원액=스코틀랜드 여행길에 위스키 공장(증류소) 방문은 빼놓을 수 없는 일정이다. 위스키 제조 과정을 볼 수 있고 원액에 물을 섞어 시음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증류소가 밀집한 스페이사이드는 세계의 양조장이라 할만한데 인버네스도 이 지역과 인접해 있다. 특히 이곳에는 한국인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위스키 '발렌타인'의 에든버기 증류소가 있다. 주정의 원료인 보리가 잘 자라는 하이랜드의 고지대 기후와 맑은 물은 위스키 증류소의 입지 조건으로 최적이다. 위스키는 몰트(맥아)를 발효시킨 1차주를 증류시킨 다음 나무통에 넣어 숙성시키는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몰트 위스키는 향과 맛이 깊고 짙은 것이 특징. 발렌타인의 경우 맛과 향이 각기 다른 7가지 위스키 원액을 혼합해 발렌타인 17년산을 만든다고 한다. 저장고에는 보관을 시작한 연도가 적힌 원액 오크통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블렌드 위스키의 맛과 향은 원액을 혼합하는 블렌딩에서 결정된다. 200여년에 이르는 발렌타인 역사에서 블렌딩을 책임지는 마스터 블렌더는 단 5명뿐이었다. 위스키는 골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존 레인 발렌타인 마케팅 본부장은 "위스키와 골프는 주류와 스포츠 분야에서 역사가 깊고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장인정신과 숙련된 솜씨를 요하는 점 등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발렌타인은 1960년 발렌타인 골프 토너먼트를 개최하기 시작하는 등 유럽프로골프 투어 대회를 후원해왔고 2008년부터는 한국에서 유럽ㆍ아시아ㆍ한국 투어 대회를 겸하는 발렌타인 챔피언십을 열고 있다. 레인 본부장은 "골프 스폰서십을 통해 발렌타인의 가치를 알리고 골프 발전에도 이바지하는 파트너십을 이어가고자 한다"면서 "음주와 골프 모두 건강에 해를 끼치지 않을 정도로 책임 있고 신중하게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중세 고성(古城)과 네스호=기원전에 유럽 대륙에서 건너온 피크트인이 성과 도시를 쌓기 시작했을 만큼 인버네스는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인구 6만5,000명으로 도시 규모는 크지 않으나 고성과 건축물들이 곳곳에 보존돼 있어 거꾸로 가는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인버네스성은 네스강이 내려다 보이는 낮은 언덕 위에 있다. 11세기에 목조 건물로 지어졌다가 나중에 석조로 개조됐다. 지금은 주(州) 재판소로 사용한다. 스코틀랜드의 성은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웅장한 분위기를 풍긴다. 시내에는 네스강변을 따라 올드 세인트 스테픈 처치를 비롯한 9개의 교회 등 옛 건물들과 고풍스러운 다리를 둘러볼 수 있다. 영화 '하이랜더'의 배경인 하이랜드 지방의 산과 호수가 스코틀랜드 관광의 하이라이트다. 길이 45㎞의 네스호에서는 네시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크루즈 관광을 즐길 수 있다. 네스호 전시관은 네스호의 지질학ㆍ생태학적 특징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고 네시에 관한 사진과 목격담 등 자료들과 탐사에 사용됐던 장비들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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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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