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7월21일] 아스완 하이댐

1971년 7월20일, 이집트. 온 나라가 감격에 젖었다. 아스완 하이댐이 완공됐기 때문이다. 제방 길이 3.6㎞, 저수량 1,620억톤(소양강댐의 59배)라는 규모도 규모지만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댐이어서 기쁨이 더 컸다. 아스완 댐 상류 7㎞ 지점에 댐을 더 짓는다는 계획이 처음 구상된 것은 1952년. 나세르가 쿠데타로 왕정을 몰아낸 직후였다. 애초의 자금줄은 미국. 10억달러를 요청받은 미국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다 나세르가 중립정책을 표방하자 태도를 바꿔버렸다. 국제통화기금도 차관 2억7,000만달러 제공 약속을 뒤집었다. 돈이 궁해진 나세르의 선택은 수에즈 운하 국유화. 운하 통행세를 공사비에 충당한다는 명분의 국유화 선언은 1956년 수에즈 위기와 2차 중동전쟁을 낳았다. 이집트와 서방간 관계가 벌어진 틈을 타고 들어온 소련은 공사비의 3할과 장비ㆍ기술을 댔다. 정치적 위기를 겪으며 착공 10년 만에 대역사를 이뤄냈으니 감회가 깊었을밖에. 기대대로 아스완 하이댐은 번영을 안겼다. 홍수조절은 물론 2억기가와트 전력을 생산해 이집트 전력수요의 절반을 충당하고 비료공장 등 관련산업을 키워냈다. 반면 예상하지 않았던 부작용도 컸다. 고대유적이 물에 잠기고 상류지역 원주민 9만명이 보금자리를 잃었다. 이집트 인구의 80% 이상이 댐 건설로 조성된 세계 최대의 인공호수인 나세르 호 주변으로 모여들어 지역간 불균형도 심해졌다. 곡창지대인 나일강 삼각주의 농업생산도 강이 범람하고 침전물이 막히는 통에 갈수록 줄어들고 염도가 낮아진 지중해의 생태계까지 바뀌고 있다. 아스완 하이댐의 공과(功過)를 둘러싼 논쟁은 남의 일이 아니다. 수마가 할퀴고 간 지역에 댐을 놓자는 논의가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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