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기업에 자금공급 확대 움직임
돈 굴릴곳 마땅찮아 대출 눈돌려
'기업대출 빗장 풀리나'
시중은행들이 기업대출 쪽에 차츰 눈을 돌리고 있다. 국고채 금리가 5%대까지 떨어지면서 국공채 투자를 통한 사실상의 '금리 따먹기'식 영업으로는 더 이상 수익을 낼 수 없는 한계에 직면한 것이 주 요인이다.
산업은행을 통한 회사채 신속인수와 정부의 신용보증 확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규제의 완화 및 부실대출에 대한 면책기준 마련등 신용경색 완화를 위한 각종 조치가 잇따고 있는 것도 은행들이 기업대출에 눈을 돌리도록 하는 또다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직 전면적으로 기업에 자금을 푸는 것은 아니지만 은행들의 기업대출 완화조짐은 여러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탁상품을 판매하면서 회사채 편입비율을 점차 확대하고 있고, 다소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심사를 다소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다.
최근에는 우량기업과 부실기업에 적용하는 대출금리 차등화 폭을 넓히면서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큰 기업엔 금리를 높여서라도 대출을 해 주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특히 기업은행은 아예 대출 우대금리(프라임레이트)까지 내려 다른 시중은행들을 자극하고 있다.
◇"더 이상 운용할 곳이 없다"
국민ㆍ주택은행은 27일부터 1년제 정기예금 고시금리를 6.5%에서 6%로 무려 0.5%포인트나 낮춰 적용한다. 외환은행도 26일부터 1년제 정기예금 금리를 6.8%에서 6.5%로 인하했다. 이에 앞서 한빛 서울 조흥은행등도 지난 20일 정기예금(1년만기) 금리를 6.5%로 최고 5% 포인트 낮춘 바 있다.
시중은행들은 이처럼 연일 하락하는 시중금리에 대응해 예금금리를 인하하고 거액예금을 사절하고 있지만 이 같은 단순한 방법으로는 더 이상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예금금리는 '임계점' 논란이 불거질 정도로 이미 바닥까지 치고 내려왔다. 지금부터 받는 예금은 사실상 역마진이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금리 시대를 맞아 다른 자금운용 수단을 찾지 않고서는 더 이상 돈을 굴릴 곳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더 이상 예금금리를 낮추는 것은 이미 무의미해졌다"며 "새로운 대출처 개발등에 나서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BBB급 회사채가 요즘들어서는 오히려 구하기 어려워졌다"며 "이제는 은행들도 자산운용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위험부담 감수하고 마진폭 넓힌다
시중금리 하락에 따른 은행권의 자금운용난은 자연스럽게 대출쪽으로 눈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은행들이 최근 우량기업과 부실기업에 대한 대출금리 적용폭을 넓히고 있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
은행들은 통상 자금조달 금리에 업무원가를 더한 후 대출거래처의 '신용위험비용'을 감안해 가산금리를 적용한다. 초우량기업외에는 거들떠 보지 않았던 과거에는 신용위험비용이라는 개념 자체가 별로 무의미 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신거래처의 신용등급과 담보유무등을 토대로 종합적으로 산출하는 신용위험비용을 정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신용위험비용 산출단계가 많아지면 그만큼 대출금리 적용폭도 넓어지는 효과가 있다. 예를들어 과거 자체적으로 산출한 4~5등급 이하의 기업에 전혀 대출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낮은 등급에까지 대출대상을 확대하되 신용위험비용에 따라 금리를 대폭 높여서 적용하는 방식이다.
우량기업에는 금리를 낮추 적용하는 반면 부실기업에는 다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금리를 높여 자금을 풀겠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심사를 완화하거나 투자등급을 낮추는 등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대출금리 차등폭이 지나치게 넓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해당기업에서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다소 금리가 높더라도 아예 자금을 못빌리는 것 보다는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 기업은행의 우대금리 인하를 계기로 시중은행들의 우대금리 인하가 잇따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기업은행은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98년 10월에도 은행권 최초로 우대금리를 인하해 다른 은행들의 연쇄적인 우대금리 인하를 사실상 유도한 바 있다.
이진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