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나의 일 나의 인생/나춘호 예림당회장] 47.특허분쟁으로 얻은 교훈

인생만사 새옹지마요, 사람팔자는 시간문제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일이 있으면 궂은 일도 뒤따를 수 있으니 미리미리 대비하라는 교훈이다. 좋은 일이 있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며 나쁜 일이 있다고 다 나쁜 것이 아닌 만큼 인간의 길흉화복을 한 가지만 보고 단정짓지 말라는 이 말은 인간이 가져야 할 겸양지덕이 담겨 있다. 2년 가까이 2억원 이상을 투자해 개발한 `소리 나는 그림책`이 출간됐을 때는 나뿐만 아니라 직원 모두가 감개무량했다. 그리고 시중에 내보내자마자 즉각적으로 반응이 왔다. 무엇보다 뿌듯했던 것은 서점가 혹은 출판계에서 예림당이니까 이런 책을 만들 수 있다고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사운드 북이 한창 잘 나가고 있을 때 다른 출판사가 보내 온 내용증명을 받았다. 우리가 사운드 북을 내기 전에 그 출판사에서 소리 나는 그림책을 먼저 개발했으며, 특허등록까지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림당은 즉시 판매를 중단할 것과 재고도서를 모두 소각하고 특허권 침해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메모리 반도체 설계와 사운드 팩 부분을 담당했던 정우실업과 대책을 강구했다. 그 결과 이것은 특허를 내줄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내용증명을 보내온 곳에 이의 제기를 했다. 그러자 상대 출판사는 우리를 특허권 침해로 고발했고 나는 특허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변리사를 통해 들어 보니 특허청에서는 소리 나는 그림책이 특허를 받을 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전임 청장이 결정한 일을 후임 청장이 번복할 수 없다며 난색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 소송에서 패하면 2억이 넘는 투자비와 그 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뿐 아니라 특허권 침해에 대한 대가로 엄청난 금액을 배상해야 할 판이었다. 소송은 1년이 넘게 계속됐다. 우리는 지인을 동원해서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나온, 컨셉트가 유사한 그림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미국에서 보내온 사운드 북을 보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를 고발한 출판사에서 낸 사운드 북은 미국에서 발간한 그 책의 복제본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특허분쟁은 1년 반 만에 예림당의 승소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소송에서는 이겼지만 손해가 너무 컸다. 1년 반 동안 소송비용도 그러하지만 그 기간 동안 책을 제대로 판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소송비용을 청구하자고 했지만 나는 승소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그만두라고 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우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창의적인 타이틀은 실용신안ㆍ의장등록ㆍ상표등록을 해서 엉뚱한 일로 시련을 겪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권리 역시 보호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사운드 북 중에서 `소리 나는 구구단`은 EU연합과 미국, 일본, 중국 등 세계 15개국에도 특허등록을 해 두었다. 소송이 끝나는 시점에 국내 몇몇 출판사에서도 비슷한 사운드 북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능이나 소리의 질에서 우리가 낸 책에 뒤지다 보니 자연 도태되고 소리 나는 그림책에 관한 한 예림당은 10여년간 거의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2년여 동안의 개발 기간을 생각해 보고, 그 뒤 책이 시중에 나가자마자 폭발적 수요를 가져 다 주었던 책, 그러다가 다시 소송에 휘말려 패소 직전까지 몰렸다가 마침내 승소하기까지의 1년 반. 그리고 소리 나는 그림책에 관한 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동안 그야말로 `인간만사 새옹지마`의 교훈을 몸소 겪었다. 그 뒤 `소리 나는 구구단`은 일본과 중국, 동남아 몇몇 나라에서 특허권 사용에 관해 교섭이 들어왔다. 그러나 우리가 한국 내에서 완제품을 만들어 보내주는 코에디션 조건을 내걸다 보니 제작비가 너무 높다며 난색을 보여 성사는 안 되고 있다. 나는 특허권 수출이 되든 안 되든 세계 최초로 우리가 개발한 `소리 나는 구구단`을 보면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낀다. <이혜진기자 has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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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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