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쯔양(趙紫陽)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유골은바바오(八寶)산 혁명열사 공묘(公墓)에 안치되지 않고 베이징(北京) 푸창(富强) 골목 6호 자택으로 다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당국도 유족도 답변하기가 어색한 문제여서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으나, 그의 유골을 바바오산 혁명공묘에 안치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유족과 당국이 유골 안치 장소에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오의 유골이 혁명공묘에 안치되지 않은 더욱 구체적인 이유를 파악하는 핵심열쇠는 양측이 유골 안치 장소에 대해 어떤 견해와 이해 관계를 갖고 있는가 하는것이다.
유족들은 그간 자오가 당 총서기와 총리를 지냈으므로, 설사 생전에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도 바바오산 혁명공묘 영안실 가운데 제1실에 그의 유골을 안치해야 한다는 주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중국 당국의 생각은 전혀 달라, 자오가 19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로 당을 분열시키는 중대한 착오를 범했으므로 국가 지도자급 인사들의 유골이 안치돼 있는 제1실에 안치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양측의 상반된 입장은 장례식이 거행되기 전날까지 절충점을 찾지 못했고 이 때문에 유족들은 유골을 자택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유족들은 당국의 자세가 워낙 강경한 데다, 언제까지나 장례식을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일보 후퇴해 일단 당국의 방식을 받아들인 다음 그 후에 문제 해결을모색하는 쪽을 택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자오의 유골이 언젠가 자신의 고향인 허난성(河南省) 화(滑)현에 안장될 가능성에 대해 유족들은 그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고 홍콩의 명보(明報)는 29일 전했다.
그가 톈안먼사태와 함께 재평가를 받아 유골이 바바오산 혁명공묘에 떳떳하게안치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 역시 역사만이 답변할 수 있으나 장차 그렇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연합뉴스) 이상민 기자